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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2016.04.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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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부터 2016년 3월까지. 한국 일본 프랑스 다국적 기자들로 구성된 ‘체르노빌 후쿠시마 현장리포트’ 취재팀은 총 4개국 10개 지역 이상을 방문, 80여명에 이르는 취재원들을 인터뷰했다.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두 원전 사고 피해자를 비롯해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원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꼭 했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원전을 강력하게 반대하진 않았다. 가령 반원전 활동은 후쿠시마보다 도쿄에서 더욱 활발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된 데는 변방으로서의 역사, 원전을 유치하면서 얻은 경제적 혜택, 소규모 마을 공동체 안에서 발언을 자체 검열하는 습성 등 역사, 경제, 사회적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마디로 정리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사고 뒤부터 끈질기게 후쿠시마를 취재해 온 후세 유토 기자는 “후쿠시마 사람들이 반대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취재팀은 그래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이 탈핵을 선언한 것도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시민 대표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17인이 끝장토론을 벌인 결과였다. 국영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토론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장 1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메르켈 총리는 친원전 정책을 고수하던 인물이지만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의된 사항을 결국 수용했다.

일률적으로 ‘원전이 정답이다’, 혹은 ‘탈원전이 정답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토론은 이어져야 한다. 효율과 안전 사이에서 최적의 답을 찾으려면, 이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 들어야 한다.

발렌티나 스몰니코바(비영리기구 ‘체르노빌의 아이들’ 대표)

원자력은 싸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원전 사고는 피해자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했다. 통계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고향을 등지고 낯선 곳에 정착해 살면서 끝없이 고통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전 사고는 수명을 단축시켰고, 후대 유전자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 아무도 체르노빌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전 인류를 위한 학교다.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이를 통해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알렉세이 모스카렌코(체르노빌 전직 경찰관)

원전에 긍정적이다. 단 제대로 규정을 따르고, 보완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체르노빌 사고 뒤에도 프리피야트(체르노빌 발전소에서 3㎞ 떨어진 원전노동자들의 신도시. 사고 뒤 거주자들은 전원 피난했다) 주민들은 체르노빌 3, 4호기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고 여겼다. 이들은 2000년 체르노빌 원전이 전면 폐쇄될 때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 동안 수많은 비용을 들인데다, 기술력 높은 인력들을 한꺼번에 잃어야 했기 때문이다.

안나 콜로체브스카(체르노빌 박물관 과학국장)

자원은 한계가 있다. 대안 에너지가 부족한데,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는 점에서 원전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그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므로 원전은 최소한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 후쿠시마는 사고 뒤에도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 탓에 노동자 및 시민들이 제대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것은 원전을 어떻게 이용할지가 아니라 폐로를 어떻게 할지다. 30년이 흘렀지만 체르노빌 원전은 아직도 폐로 중이다. 폐기물 처리 또한 뾰족한 수가 없다. 전세계 400여개 원자로 가운데 노후원전은 이미 많으며,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르게이 샬케비치(체르노빌 전 제염노동자)

원자력은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성격의 에너지다. 내가 그 증인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 건강한 청년들을 대거 투입했다. 후쿠시마에서는 제염 및 원전노동자들을 이용한 돈벌이가 성행하고 있다. 원전은 생명보다 돈을 우선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가 갖는 유일한 긍정적인 면은 후대에게 배울 점을 준다는 것이다.

고이데 히로아키(교토대 원자로실험소 전 조교)

원자력은 필요 없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을 껐지만 에너지는 부족하지 않았다. 일본은 수력과 지열이 풍부하다. 엄청난 재난을 겪고도 같은 설비를 계속 이용하겠다는 정부는 비상식적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사고로 책임지지 않기만을 배운 듯하다. 어떤 나라든 원전 이용을 반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선 한국에 이를 대체할 풍부한 에너지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원전과 군사 안보는 사실상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쓰키 다니(후쿠시마 오염지역에 남겨진 소들을 보살피는 자원활동가)

가난했던 후쿠시마는 원전을 받아들여 일자리를 만들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이 됐다. 원전 인근 주민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원전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현재 후쿠시마에선 수습에 외지인을 투입하고 보상금을 차등 배분해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다. 원전 사고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더 슬픈 것은 커뮤니티의 해체다. 사람들은 생명을 구하는 노력을 포기해버렸다. 나는 원전을 찬성 또는 반대하기보다 이미 벌어진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오카 미노루(히로시마 원폭 및 후쿠시마 사고 피해자)씨 가족

원폭 피해자였지만 원전과 그것을 연결할 수 없었다. 사고가 나기 전만 해도 원자력은 완벽하게 안전한 에너지라 했고, 아무도 그 시설이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줄 몰랐다. 국가는 가난하고 정치적인 힘도 없는 곳에 원전을 지었다. 실제 그 전력을 쓰는 사람들은 멀리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정치인도 믿지 않는다. 완전한 폐로도 요원해 보인다. 과거 우리의 무지가 한스러울 뿐이다. 우리 같은 피해자를 또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전 사용은 안 된다.

오가와 데쓰시(후쿠시마 사고 전후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사고 전처럼 아이들이 밖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큰 피해를 내고도 일본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하고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국가로서 원전 위험성을 알리고 함께 하지 말자고 설득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비록 개인은 힘이 약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오노 이즈미 (3ㆍ11 피해자 지원 비영리기구 ‘글로벌미션재팬’ 부대표)

모든 원전을 다 닫아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노후한데다 지진과 쓰나미를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각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을 확실히 요구하고, 부적합 판정을 받았을 때 가동을 금지시키는 방식으로 원전을 줄여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검사 비용 자체가 늘어난다면 원전 운영사들은 자연히 원전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는 현재 부정확한 정보 탓에 시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원전은 사고 시 그 위력이 매우 파괴적인 만큼 시민들이 원전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고, 운영사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신뢰 속에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리 = 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사진 =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delet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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