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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출판사 첫 책] ‘사고의 용어사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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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출판사 첫 책] ‘사고의 용어사전’(2009)

입력
2016.07.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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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하자 직원들의 공포감이 날로 증대됐다. 다섯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 정기적으로 주던 광고를 끊겠다는 전화가 걸려온 날에는 사무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담당 직원은 “우리 망하겠어요!”라고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직원들이 대안을 내놓았다. 출판 전문지와 출판에 대한 책만 펴내서는 연구소야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자신들은 미래가 불안하니 더 대중성 있는 책을 펴내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쌓아두어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직원들은 출판사의 이름부터 정해서 알려줬다. ‘북바이북(book-by-book)’은 ‘책을 통해 책을 만나다’라는 뜻이라면서 책에 대한 단행본들을 주로 펴내볼 생각이라고 했다. 직원들은 그런 책들을 기획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내놓은 책이 일본의 재야철학자 나카야마 켄의 ‘사고의 용어사전’이었다. 이 책은 놀이, 아날로지, 알레고리, 낯설게 하기, 의식, 이데아 등 오늘날 가장 빛나는 철학 개념 100개를 골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그 개념들을 어떻게 사용하며 사고할 것인지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제대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읽으려니 쉽지가 않았다. 번역 원고가 들어왔지만 직원들에게 교열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창비에서 일할 때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침 그 친구가 시간이 있었던 지라 교열을 맡아줬다. 이 책에 대한 소개 기사를 써준 철학과 출신의 한 기자는 우리 책처럼 술술 읽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은 초판만 겨우 팔리는 수준이었다.

2012년 2월 18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누군가 교보문고 온라인 일간 베스트셀러 인문분야에서 이 책이 3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줬다. 이유를 찾아보니 그날 한 신문에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대학 신입생을 위한 분야별 추천서’에 이 책을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새물결)와 함께 추천해준 것을 알게 됐다.

강 박사는 “철학의 역사와 개념의 역사가 이처럼 멋지게 결합될 수도 있을까. 철학의 중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개념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라는 도서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 짧은 추천사 덕분에 이 책은 보름 만에 1,500부가 팔려나갔다. 추천사 한 줄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책이 3쇄를 찍기는 했다. 하지만 아쉽다는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오디세이로 읽힌다고 했다. 실력 있는 번역자와 30년 가까운 경력의 편집자를 만났기에 그런 이야기나마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서양철학 일변도인 것이 거슬린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충분히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동서양의 철학과 한국철학을 아우르는 새운 용어사전을 펴내면 된다. 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적 풍토를 볼 때 내 생전에 그 꿈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한기호 북바이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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