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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전만으로도 한국 원전산업 경쟁력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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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전만으로도 한국 원전산업 경쟁력 키울 수 있다”

입력
2017.12.11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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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이어 英원전 공사 ‘릴레이’

UAE 후속 수주전도 승산 가능성

해외 활로로 원전기술 계속 유지

탈원전과 해외 시장은 가치 달라

원전수출 장애요인으로 볼 수 없어

이번 英 수주전서도 정부 역할 커

2013년 지독한 전력난 극복

절전 파도타기 운동 가장 기억 나

한전은 그동안 전기도매상 역할만

에너지솔루션 플랫폼 만들어야

8일 지난 8일 이임식 직후 한국일보와 퇴임 인터뷰를 가진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정보기술(IT), 배터리, 전기 품질 등을 조합해 에너지솔루션 플랫폼을 만드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8일 지난 8일 이임식 직후 한국일보와 퇴임 인터뷰를 가진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정보기술(IT), 배터리, 전기 품질 등을 조합해 에너지솔루션 플랫폼을 만드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수년간 원자력발전소 공사가 진행되지만, 그 이후에는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야 우리나라 원전 기술을 계속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영국 원전 사업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신고리 5ㆍ6호기 완공 때쯤 영국 원전, 사우디 원전 공사가 이어지고, 2021년이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후속기 수주전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 UAE 바라카 원전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때문에 후속 발주가 이뤄지면 승산이 높다. 그러면 해외 원전만으로도 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계속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8일 이임식 직후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만난 조환익(67) 한국전력 전 사장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후에도 한국의 전력 산업의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데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조 사장은 2012년 12월17일 취임해 5년에서 꼭 8일 빠진 1,817일 동안 한전 최고경영자(CEO)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 수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_5년간 한전을 이끌다 퇴임했는데 심정은

“진작부터 12월쯤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했고 장관이 이해해주고 풀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퇴임하려니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극적인 상황이 많았고 기적 같은 일도 있었고, 그래서 후회 없이 5년을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한전 직원들에게 고맙고, 끝날 때 눈물이 많이 나더라. 4년쯤 지나면서 정말 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하는 직원이나 못하는 직원이나 다들 품속에 있는 것 같고 잘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퇴임 연설도 모두가 함께 웃고 함께 우는 화목한 인간관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_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

“취임 초기인 2013년 지독한 전력난이 있었다. 순환 단전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그때 ‘절전 파도타기’라고 이름 붙이면서 전 직원이 가까운 사람들 10명에게 특정 시간대에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전달받은 사람은 다시 10명에게 부탁해달라고도 요청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기적적으로 전력 수요를 감축시켜서 위기를 모면했다. 그 이후 신기하게 한 번도 전력위기를 겪지 않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절전을) 캠페인으로만 생각하다가 그때 피부로 느낀 것이다. 그 위기가 기회가 되어 수요관리(DR)사업,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동 한전사옥 매각은 행운이었다. 거액의 자금으로 에너지산업에 활발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만들고, 그게 다시 모든 제조업에 혜택이 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_직원들과 기억 남는 일은

“제일 잘한 건 여름 휴가철에 직원들에게 메일 보내면서 ‘부하직원 휴가 잘라먹는 상사는 3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쓴 거다. 그 이후 상사 눈치 보던 직원들이 모두 여름 휴가를 갔다. 너무 바빠서 지방에 있는 지사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_영국 원전 수주에 4년간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언제 영국 원전 수주가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나.

“처음엔 비관적이었다. 영국이 한국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UAE 바라카 원전이 점점 모양을 갖춰가면서 전문가들이 견학했고, 한국이 주요 고려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어려워지고 일본 도시바도 부도 직전까지 몰리면서, 전 세계 원전 건설 업체들이 줄어들았다. 한국, 러시아, 중국 정도만 남게 되면서 상황이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4월 그렉 클라크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의 한국 방문이 분위기가 바뀐 결정적 순간이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는 굉장히 큰 부처이고, 클라크 장관은 아주 바쁜 사람인데, 나를 만나러 왔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 관련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우리 기술력을 설명하고, 원전 시설을 직접 보여줬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바둑으로 치면 이제 첫 포석을 놓은 정도다.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자금조달도 계획도 꼼꼼히 세우고, 안전 문제도 거듭 확인하며 설계해야 한다. 원전 건설은 3, 4년 이후 시작될 것이다. 그 안에 모든 걸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_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이 원전 수출에 장애 요인이 되지는 않았나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국내 원전은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것이고 해외 원전 수출은 시장과 산업의 문제다. 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경제성을 중시하느냐, 환경과 안전을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반면 해외 원전 수출은 해당국이 원전 건설을 결정해서 그 요구를 맞추는 것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진행하면서 원전 수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에 반신반의 하는 시각도 있는데, 정부의 역할이 컸고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한다.”

_정상 외교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아직 정상이 나설 단계는 아니다. 앞으로 협상이 장기간 진행될 테니 최종 단계에서 한영 정상이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UAE 바라카 원전 건과는 다르다. 그땐 UAE 측이 대부분 돈을 대고 우리는 조금의 지분만 투자한 채 원전 건설과 운영만 하면 됐다. 굉장히 조건이 좋은 사업이어서 프랑스, 일본도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여러 혜택을 제시하는 등 도움이 필요했다. 반면 영국 건은 그런 정부 차원의 종합적 지원이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최고의 기술로 잘 지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재임 기간 전력사업과 빅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의 접목을 강조했다. 미래의 한전은 어떤 기업이 돼야 하나

“지금까지 한전은 전기도매상에만 머물렀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화석연료 시대에는 정부가 판매독점과 이윤보장이라는 양날의 칼을 전기회사에 줬지만, 파리기후협약 이후 여러 나라가 화석연료에 대해 제동을 걸고 발전사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선택하는 나라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대체에너지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여기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전력 산업에 진입해 이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전을 에너지 솔루션 회사,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시키려 노력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정보기술(IT), 배터리, 전기 품질 등을 조합해 에너지솔루션 플랫폼을 만드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

_차기 한전 사장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한전은 굉장히 무거운 조직이다. 그러나 응집력만 생기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다. 한전 사장은 내부와 소통하고, 노조와 소통하고, 업계ㆍ정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적 감각도 필요하다. 에너지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큰 조직을 이끌고 갈 소통 능력과 리더십, 글로벌 감각이 중요하다.”

_우리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가 조선산업 구조조정 정책을 내놓으며, 금융정책 측면만이 아니라 산업정책 측면도 고려했다고 밝혔는데, 이제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 같다. 그동안 산업정책은 금융정책의 하위수단처럼 여겨졌는데, 재정 금융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조선산업의 기술을 높이고 발주 업체가 원하는 제품을 어떻게 맞춤형으로 만드느냐,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을 어떻게 높이느냐, 이걸로 경쟁해 이겨야 근본적인 활로가 열린다. 그걸 할 수 있는 게 산업 정책이다. 산업부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위상이 높아지면 좋겠다.”

◆ 조환익 前 사장은

1950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대 재무관리 MBA, 한양대 경영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행정고시 14회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차관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때는 KOTRA 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12월 한전 사장에 취임해 5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던 한전을 이듬해 흑자로 돌려놓았고, 2015~2016년 2년 연속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한전을 탄탄한 공기업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전남 나주시로 한전 본사를 이전한 이후에는 나주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밸리를 조성하고 한전공대 설립 기반을 마련했다. 에너지 솔루션을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는 등 한전이 전기 공급 회사에서 전력 솔루션 회사로 변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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