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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모험을 사랑한 남자, SF 장르의 창대한 시작을 열다

입력
2017.06.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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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과학소설의 아버지 쥘 베른

#1

산업혁명기 변화 모험담에 담아

흥미진진 스토리텔링 일약 성공

제국주의 시각 벗어난 풍자 압권

청소년 필독 교양서로 자리잡아

#2

1907년 첫 우리말 SF ‘해저여행’

이해조 번안 ‘철세계’ 첫 단행본

100여년 SF문학 역사에도 불구

여전히 문학계 변방에 머물러

1907년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번역헤 소개한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원제 '해저 2만리'). SF 장르는 이렇게 한국문화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07년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번역헤 소개한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원제 '해저 2만리'). SF 장르는 이렇게 한국문화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07년,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펴내던 잡지 ‘태극학보’에 새로운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다. 제목은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 바로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첫 우리말 번역이었다. 구한말과 개화기를 거치며 서양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에 과학기술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콘텐츠인 과학모험담이 이 땅에 최초로 선보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문화사에서 SF의 도입 자체는 결코 늦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뒤 본격적인 장르로서 SF의 소개와 창작이 융성하지 못해 지금까지 문학계의 변방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쥘 베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0일간의 세계 일주'(2004). 그의 작품들은 약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며 살아숨쉬고 있다. 쇼박스 제공
쥘 베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0일간의 세계 일주'(2004). 그의 작품들은 약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며 살아숨쉬고 있다. 쇼박스 제공

제국주의적 과학무용담에 성찰을 담다

쥘 베른은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발전한 과학기술이 삶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생생한 현장을 즉각적으로 소설로 옮겼던 작가였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 세상이 시시각각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80일간의 세계 일주’도 바로 이런 식으로 신사들의 한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 일주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글쎄, 한 100일 정도?” 그 때 주인공이 말한다. “80일이면 충분해.” 80일로는 힘들다며 반론이 나오고 재반박이 이어지다가 결국 논쟁은 내기로 발전한다. “정말 80일 만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면 어디 직접 증명해 봐라!”

발전한 과학기술에 힘입어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모험담. 마법이나 마술, 신화 속의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과학모험. 쥘 베른은 바로 이런 분야를 개척해 낸 인물이다. ‘해저 2만리’(1870)에 나오는 잠수함 노틸러스호, 그리고 ‘지구에서 달까지’(1865)에 나오는 우주선 등은 훗날 실제로 실현되는 구체적 미래상이었다.

이런 모험담의 이면에는 서양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실체가 있었다. 당시의 많은 통속 작가들은 남자 영웅이 위기에 빠진 미녀를 구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식의 중세 무용담을 서양인 주인공과 미개한 원주민의 대결로 구도만 바꾸어 내놓곤 했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 과정은 필연적으로 온갖 갈등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인문사회학적 성찰이 일어나 문화예술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베른의 진가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그의 작품에 배어 있는 통렬한 풍자와 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쥘 베른이 H.G. 웰스와 함께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으며 단지 낭만적 과학모험담의 선구자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과학기술과 스토리텔링의 결합에 더해 인류의 기술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기 때문이다. 베른은 웰스보다 시기적으로 30년 정도 앞서서 이 분야를 개척한, 실질적인 SF 장르의 건설자이다.

영화사에 최초의 과학영화로 꼽히는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를 원작으로 한 흑백 무성영화로 당시로선 혁신적인 특수효과를 동원했다.
영화사에 최초의 과학영화로 꼽히는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를 원작으로 한 흑백 무성영화로 당시로선 혁신적인 특수효과를 동원했다.

‘철세계’와 ‘해저 2만리’의 함의

앞에서 ‘해저 2만리’가 1907년에 처음으로 우리말(국한문 혼용)로 소개되었다고 했지만, 당시 ‘태극학보’에 연재된 번역은 끝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08년에 쥘 베른 원작의 ‘철세계(鐵世界)’가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최초로 완전하게 소개된 그의 작품이 되었다. 원작은 베른이 1879년에 발표한 ‘인도 왕비의 유산’이며, 번역이 아닌 번안으로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바꾸어놓았다. 번안자는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신소설의 개척자로 유명한 이해조이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제목 위에 ‘과학소설’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일본, 아니면 중국에서 건너 온 표현으로 추정된다. 영어문화권에서 SF라는 명칭이 1920년대에나 처음 등장한 것에 비해 한자문화권에서는 과학과 이야기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특성을 명확하게 포착했던 셈이다.

100년도 더 전에 우리에게 소개된 번안작 ‘철세계’는 과학기술의 양면적 성격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으로 좌선과 인비라는 두 선비가 나오는데 좌선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명공학을 발전시켜 장수촌을 건설하려는 반면, 인비는 철강기계산업에 매진하여 강한 무력으로 세상을 통제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두 사람 다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더 낫게 바꾸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그 방법론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철세계’에서 인비의 야망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노틸러스라는 잠수함과 네모 선장이 등장하는 ‘해저 2만리’ 역시 단순한 모험담은 아니다. 네모 선장은 강대국에게 핍박받는 약소국 출신으로서 복수를 꿈꾸며 노틸러스호를 이끌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장차 정치적으로 큰 위협수단이 될 수 있음을 내다 본 것이다. 베른이 오늘날까지 빛을 잃지 않는, 생명력이 긴 작가인 것은 이렇게 과학기술의 전망을 긍정적인 낙관 일색으로만 포장하지 않은 냉철함에도 그 이유가 있다.

1954년 월트디즈니가 제작한 영화 ‘해저 2만리’ 포스터.
1954년 월트디즈니가 제작한 영화 ‘해저 2만리’ 포스터.

SF를 넘어 교양이 된 쥘 베른

한국에서 쥘 베른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20세기에 교육받고 성장하며 독서문화 생활을 누린 세대에게 쥘 베른은 하나의 교양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할 것이다. ‘해저 2만리’를 비롯해 ‘80일간의 세계 일주’, ‘15소년 표류기’등은 청소년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한 번씩은 읽기 마련인 작품이다. 원작 소설뿐만 아니라 각색된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 많은 2차 창작물들이 청소년기의 문화콘텐츠 목록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문화적으로 수용되는 양상을 보면 베른은 과학교양 소설가로서 광범위한 인기를 누렸는데, 이는 후대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과 유사하다. 아마도 베른 이후 가장 유명한 프랑스 과학소설가일 베르베르의 독자는 대부분 SF 팬이라기보다 그저 베르베르의 애독자이다. ‘쥬라기공원’ 등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SF 작가로서가 아닌 대중소설가로 통한다. 그의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 SF에 속하지만 과학스릴러라는 별도의 범주로 규정되곤 한다.

베르베르나 크라이튼, 그리고 베른의 공통점은 SF라는 장르를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조차 진입 장벽을 느끼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의 직접 묘사를 최소화하고 대신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 둘 이야기 스타일에 공을 들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방법이 과학교양의 계몽이나 상상력의 확장에 효과적이었다. 이들의 독자가 모두 SF 팬이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과학기술, 그리고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전히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SF 작가들로서는 유념할 만한 부분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출현에 따른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폭넓은 시야로 통찰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SF의 본령이라면, 우선 독자 대중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려는 노력도 좋은 방법론이지 않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쥘 베른이라는 훌륭한 모범답안은 진작부터 제시되었던 것이다.

박상준ㆍ서울SF아카이브 대표

쥘 베른

1828년 2월 8일~ 1905년 3월 24일. 프랑스 항구도시 낭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유난히 지리 과목에 관심을 보이는 등 여행이나 모험을 동경해서 열한 살 때 가방 하나만 들고 항구로 가서 외국으로 가는 배를 타려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때 아버지로부터 ‘여행은 상상 속에서만 하라’는 말을 들은 뒤 모험담을 소설로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1863년에 발표한 첫 장편 ‘기구를 타고 5주간’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순조롭게 전업 작가의 길을 시작한 뒤,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상상을 담은 작품들을 내놓아 이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향력은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도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사르트르, 롤랑 바르트, 장 콕도, 생텍쥐페리 등이 그에게 영감을 얻었다.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쥘 베른의 아이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유네스코 통계(Index Translationum)에 따르면 쥘 베른은 전 세계에서 아가사 크리스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번역된 작가이며 그 다음이 셰익스피어이다.

<소개된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지음

고정아 옮김

열린책들 발행

해저 2만리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발행

지구에서 달까지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발행

인도 왕비의 유산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발행

15소년 표류기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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