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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들의 선택이 곧 삶이란다

입력
2016.03.2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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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목장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고향옥 옮김

해와나무 발행ㆍ32쪽ㆍ1만1,000원

'희망의 목장'은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소를 돌보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통해 재난의 풍경을 조곤조곤 털어놓는다. 해와나무 제공
'희망의 목장'은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소를 돌보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통해 재난의 풍경을 조곤조곤 털어놓는다. 해와나무 제공

삶은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때로는 선택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무언가를 선택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었고, 대부분 사소하고 가끔은 무거웠을 선택들이 거듭되며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희망의 목장’은 한 사람의 어떤 선택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출입금지된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지금껏, 여전히 소를 돌보며 사는 사람,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소치기’다. 목장에 살면서 소를 돌보는, 그리 복잡할 것 없던 그의 삶은 목장 근처 원자력발전소 탓에 꽤나 복잡해졌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원자력발전소를 덮치고, 방사능이 누출된 것이다. 정부는 피난 명령을 내린다. 사람들은 떠나고 동물들은 버려진다. 사람 때문에, 사람 곁에서 살아야 했던 뭇 생명들이 방사능을 뒤집어쓰고 병들고 굶어 죽고 종내는 도살당할 운명에 놓였다.

그는 “먹을 수 없으니 팔 수도 없는” 소들을, “인간이 정한” 삶을 사는 소들을, “살아 있으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 소들을 떠나지 못한다. 팔지도 먹지도 못하니 “의미를 잃은 소”를 살처분 하라는 정부 지침도 거부한다. 그러나 그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의미 없는 일일까? 어리석은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의미를 잃은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작가는 어린 독자에게 소치기의 복잡한 속내를 조곤조곤 털어놓고, 화가는 재난 한복판에서 계속되는 삶의 풍경을 묵묵히 충실하게 그려낸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그저 잘못된 국가 정책이 빚어낸 재난 앞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거대한 모순 앞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평범한 한 개인을 보여줄 뿐이다.

“희망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는 걸까?” 소치기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필사적으로 사는 것, 이것이 그의 선택이다. 이 책은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물을 뿐이다. 당신들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느냐고, 그 선택의 의미를 알고 있느냐고.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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