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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촌놈의 서울살이

입력
2016.10.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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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울을 와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두메산골까지는 아니어도 흙먼지 폴폴 날리던 충청도 시골 동네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서울은 늘 경외감 돋는 먼 세상이었다. 그해 겨울 처음으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던 나는 눈망울이 크고 예뻤던 ‘차장 누나’의 미소와 넋을 잃고 바라보던 차창 밖 눈보라를 고스란히 기억한다. TV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국보 1호 남대문을 직접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했고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들과 온갖 차들을 보며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타보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신기해 수도 없이 오르내리다가 멀미가 난 것도, 창피하지만 도저히 적응을 못 해 일주일 넘도록 버티다 결국 호되게 배앓이를 하게 만든 수세식 좌변기에 대한 공포스런 기억도 있다. 한마디로 잔뜩 주눅이 들었던 그때의 첫 서울 나들이는 여전히 화석처럼 내 안에 남아 있을 만큼 무척이나 강렬했었다.

어린 ‘촌놈’의 서울 찬가는 오래 가지 못했다. 까까머리 친구들에게 ‘나 서울 갔다 왔다’는 것이 충분한 자랑거리였던 그 옛날에 아마 몇 번쯤은 우쭐댔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서울에 대한 환상 가득한 호기심은 이내 시들시들 사라지고 말았다. 우선 ‘푸세식 똥간’에 쪼그리고 앉아 익숙한 자세로 일을 보게 된 촌놈은 제 자리에 돌아온 자체가 기뻤다. 이제껏 무심히 뛰놀기만 했던 산과 들이 더없이 반가웠고 늘 가슴을 채워주던 상큼한 공기를 다시 들숨 날숨으로 접하는 일상이 고마웠다. 너른 자연과 익숙한 삶의 공간이 주는 한적한 풍경 속에서 어린 나는 평온을 되찾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거대도시의 숨막히는 풍경에 속절없이 압도됐던 나는 그냥 촌놈인 게 차라리 편했던 듯싶다.

흙길이나 숲 대신 보도블록과 콘크리트 건물 가득한 주변 환경 속에 살아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도시가 낯설다. 무엇보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음과 사람들의 인색한 표정들에 항상 기가 죽는다. 도로에 차를 운전해 나갈 때는 온통 신경이 사방으로 뻗는다. 갓 돌이 지난 딸아이와 아내를 태우고 나갈 때는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가는데 배려 없이 끼어들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때는 평소 잔잔하기로 ‘소문난’ 성질이 욱하고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나 자기 본성이 깨어난다고 하던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리 점잖은 성격이 아닌 듯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기어코 차에서 내려 큰소리로 대거리를 하는 사달이 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남 탓으로 내몰 일만은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할 상황임에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채 남 탓으로 책임을 미루려는 속물근성으로 스멀스멀 감정을 삼켜버린 내 탓이 더 컸다. 무엇이 나의 평정심을 종종 잃게 하는 걸까.

책임 있는 자들의 나라 만들어가는 꼴에 더욱 화가 돋는 요즘, 누군가의 행위에 자제심을 잃고 반감을 품고 있는 나를 볼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평온의 기운을 잃어가는 나의 모습에 한없이 슬퍼지는 탓이다. 얼마 전에는 탈서울을 꿈꾸며 여기저기 눈독을 들여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고 자란 곳이 시골이니 그런 공간에 몸을 들이면 좀 나아질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지인들의 귀농ㆍ귀촌 소식에 귀가 솔깃해진 이유도 있었다. 허나 그리한들 과연 얼마나 나아질 수 있겠는가.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니 풍요로운 가을 햇살 아래 자연을 품은 정경들이 무척이나 여유롭기만 하다. 문득 지금 머문 자리인 이곳에서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이루고픈 생각에 호흡을 크게 내쉬어 본다. 아직 여물지는 않았지만, 혹여 가을이 서둘러 내린 곳이 있으면 잠시 기대어 앉아 보고 싶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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