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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13 14:05
수정 : 2015.04.14 04:41

[삶과 문화] 귀여워

등록 : 2015.04.13 14:05
수정 : 2015.04.14 04:41

집에는 10년 째 키우고 있는 푸들이 있다. 옅은 갈색의 곱슬곱슬한 털에 뒤덮여 있어서 언뜻 보면 ‘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린양이나 혹은 곰 같기도 하다.

어렸을 적에 잘 빗겨서 안고 나가면, 인형인줄 알았는데 움직인다면서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마디로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말도 잘 안 듣고, 온종일 훔쳐먹을 궁리만 한다. 이름을 불러도 내키는 때만 반응을 하고, 필요한 목적이 있을 때만 친한 척을 한다. 어떻게 외면과 내면이 그렇게 불일치할 수가 있는지 당황스럽다.

얼마 전에 몇 달 여행을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만난 개는 여전히 귀여웠다. 못 본 새 많이 늙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하긴, 큰 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 몇 달 만에 갑자기 늙어버리는 것도 이상하다. 그런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전한 귀여움을 뽐내고 있는 개를 보면서 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 지나 노년으로 들어서는 나이에 여전히 그렇게 지나치게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개가 거울을 볼 줄 안다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흡족하기보다는 짜증이 나지 않을까?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뱀파이어가 된 꼬마 클로디아는 영원히 아이로 머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절망하는데 나의 개도 비슷한 심정일 것만 같다.

단지 애완견에 지나친 감정이입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애완동물이 가지는 이런 식의 귀여움이 지나치게 강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커버린 개가 왜 이렇게까지 귀여워야 한단 말인가! 평생을 인간에게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체로서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특성인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뭔가 속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이렇게 귀여운 애완견이 대중화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해서 동네의 모든 개를 쓰다듬고 다니다가 성격이 삐뚤어진 개(요즘 식으로 말하면 자존감이 낮은 개)에게 물린 적도 몇 번 있는데, 여전히 그 습관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 기억에 따르면 그 개들은 대체로 인형 같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커다란 잡종들이었다.

그 때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도베르만처럼 전혀 귀엽지 않은 종류의 개를 좋아한다. 하지만 집이 좁고 정원이 없으니 키울 수 없다. 아마도 이런 환경의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유난이 작고 귀여운 견 종이 사랑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취향과 반대로 귀여움의 상징처럼 생긴 얄미운 성격의 푸들을 키우는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인가.

그런데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귀여움 유행’은 단지 애완견이라는 장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아니 요즘 사람들은 귀여운 개만큼이나 귀여운 사람에게 더 열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귀여운 개 같은 인간에게 열광한다. 다이어트와 동안 열풍, 점점 더 어려지는 말투, 아이돌문화, 양육프로그램의 유행 등은 ‘귀여움’ 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로 늘어선다. 그런데 귀여움은 미성숙의 미학이다. 그에 대한 지나친 열광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아니 열광을 넘어 귀여움에 대한 숭배가 우리 사회의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제부턴가 살아남기 위해 귀여워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귀엽게 생긴 개라도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귀여움이란 사실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기대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내 앞에 놓인 세상과 사람들이 부드럽고 순하며 안전하기를 사람들은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살아남는데 진짜 필요한 것은 이빨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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