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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때문에… 이웃사촌이 원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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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때문에… 이웃사촌이 원수 위기

입력
2018.06.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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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길목 대구 동구 인산마을

2년 전부터 ‘벌똥’ 피해 호소

차량엔 커버… 빨래건조는 실내서

“벌통 옮기거나 수량 줄여야” 주장

양봉업자 “양봉은 생계수단…

내 땅에 나가라는 것 어불성설” 반박

대구 동구 진인동 한 슈퍼 앞, 올 초 벌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진인동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동구 진인동 한 슈퍼 앞, 올 초 벌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진인동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회관 앞, 벌똥을 피하기 위해 차량커버를 씌워진 차가 주차되어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구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회관 앞, 벌똥을 피하기 위해 차량커버를 씌워진 차가 주차되어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19일 오후 대구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팔공산 갓바위 길목의 작은 슈퍼마켓 앞에는 ‘벌떼들로 인하여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동구청장님! 살려주세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동네 안 마을회관에는 7명의 주민들이 벌 때문에 겪는 고통을 앞다투어 쏟아냈다.

조금 전 빨래를 널고 왔다는 홍모(78)씨는 “빨래를 밖에 널면 금방 노랗게 된다. 벌똥이다. 맑은 날에도 집안에 널 수밖에 없다. ‘벌쟁이’가 이사 온 후부터 3년째 이 고생이다”고 말했다. 윤모(94)씨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지난번엔 머리 쪽에 쏘였는데, 그저께는 밭일하다 쏘여 며칠 고생했다”며 “벌에 쏘일까 무서워 맨 몸으로 다니기 무섭다”고 호소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계속 살고 있다는 최모(88)씨는 “지금은 활동이 잦아들어 그나마 지낼만하지만 봄에는 차를 세우면 1시간도 안 돼 노랗게 물들어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거나 차량커버를 씌워놓아야 한다”며 “벌 때문에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날 수도 없고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대구 동구 진인동 갓바위 가는 길목의 도심 속 농촌마을인 인산마을에 ‘벌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토착민들은 벌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구청에 대책마련을 호소했고, 양봉업자는 생계가 걸린 일이라며 대립하고 있다.

문제가 시작된 건 2016년 봄. 최모(62)씨가 벌통 200여 개를 들고 와 양봉을 하면서부터다. 보통 양봉은 민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벌통을 두는 것과 달리 담벼락과 거의 맞붙은 곳에 2단으로 쌓았다. 1통에 꿀벌이 약 3만 마리로, 총 600만 마리에 이른다.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꿀벌이 먼저 쏘는 일은 드물지만, 문제는 노란 벌똥이다. 빨래나 차량이 금세 노랗게 변한다. 꿀벌이 꽃을 찾아 벌통과 밀원을 오가며 온 동네에 노란 벌똥을 투하하고 있다. 이 마을 100여 가구 대부분이 비슷한 피해를 보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꿀벌 때문에 제때 필요한 방제를 하지 못하는 피해도 본다. 양봉장과 가까운 아래쪽 40여 가구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겨울을 제외한 연중 내내 계속된다. 특히 벌 활동이 많은 2월 초부터 4월 초까지 피해가 제일 크다.

주민들은 양봉업자에 항의하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별무소용이다. 소나 돼지 등은 축사 건립 위치 등에 있어 규제를 받지만 꿀벌은 관련 법규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동구청 창조경제과 관계자는 “벌에 관련한 법적 규정이 없어 갈등 당사자들 간의 원만한 합의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동구에 벌 키우는 농가가 100호 이상이지만 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해당 양봉업자는 주민들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모 씨는 “구입해 들어온 내 땅에 벌 양봉은 안 된다며 무조건적인 이주를 요구하니 난감하다”며 “벌똥 흔적은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현상으로, 피해를 입힌 벌들이 모두 우리 양봉장의 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 가족을 책임지는 생계수단일 뿐 아니라, 자연현상인 만큼 서로 양해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며 “전 세계적으로 벌 개체수가 줄어들며 양봉업은 장려되고 있는 추세로, 금지하거나 피해야할 업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인산마을 한 주민은 “처음에는 무조건적인 이주를 원했지만, 지난 주민회의를 통해 한 발 양보해 벌통 수를 100통 이하로 줄이면 받아들이겠다는 주민 동의를 얻었고 곧 해당 업자에게 제시할 계획이다”며 “서로 원만한 선에서 합의해 다시금 편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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