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대입 벽에 막힌 창의적 인재 양성… ‘맞춤형 교육’이 답이다

입력
2017.03.03 04:40
0 0

“교육개정은 상상초월 권력투쟁”

‘전공 축소’ 논란 탓에 매번 좌절

4차 산업혁명 위한 교육분야로

교육과정 개편을 33%가 꼽아

‘무학년 학점제’등 대안 제시

핀란드 고등학교 학생들처럼

직접 시간표 짜고 맞춤 수업

인문학 강화로 융ㆍ복합 장려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학의 경우 단원 내용을 1부터 100까지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가르쳐야 하는 부담이 커요. 진도 쫓기에 급급해 하나 둘 나가 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기는 교육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 대비가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2일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46)씨의 말은 4차 산업혁명을 앞둔 한국 교육 현장의 불안감을 대변한다.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한 주입식 학습에 매몰된 탓에 4차 산업혁명을 되새길 여유조차 없다. 탄탄한 경제ㆍ산업적 토대가 마련된다 해도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인재가 지속적으로 배출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그래서 4차 산업혁명 대비는 교육이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이유다.

과도한 학습량ㆍ대학 입시 한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지난 1월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차 산업혁명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강화해야 할 교육분야’로 10명 중 3명(32.5%)이 ‘교육과정 개편’을 꼽았다. 교과 과정을 축소해야 한다는 공감은 수년 전부터 이뤄졌지만 교육계의 이기주의에 매번 가로 막히는 실정이다. 교과과정 구성에 참여하는 학자들이 전공 영역 축소를 꺼리기 때문이다. 2007년 예체능 과목을 축소하려던 김신일 당시 교육부총리는 “교육개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투쟁”이라며 두 손을 들었다. 2018년부터 적용될 ‘2015 개정 교육과정’도 창의ㆍ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학습량 경감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학계 압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성천 경기교육청 장학사는 “수업 시수만 다소 조절했을 뿐 큰 틀은 손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급자 중심의 교육은 배움 기회도 박탈한다. 중국어, 일본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나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 해도 마땅한 교사나 교재가 없어 시도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고2 양모(17)군은 “진로 교육을 강화하고 학생 동아리 활동을 보장해 준다고 하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원하는 과목이나 실습을 반영하는 수준은 아니라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어떤 시도를 해도 결국엔 대학 입시 중심 체제에 막혀 수포로 돌아간다는 점은 심각한 한계다. 서울의 한 혁신고등학교 박모(55) 교사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대상으로는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높인 수업 진행이 가능하지만 고2만 돼도 학생, 학부모의 반발이 커 철저히 입시 체제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맞춤형ㆍ인문학 중심 교육으로 재구조화 절실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과정 60년 틀을 완전히 재구조화하지 않고서는 답을 낼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 앞으로 꾸려질 새로운 생태계를 단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생태계 조성 자체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남이 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풀어갈 수 있는 학생들을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대비 교육의 핵심은 ‘학생 맞춤형 교육’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학생이 적성과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무학년 학점제’를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핀란드의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학년 구분 없이 1년 과정이 5, 6학기로 구분되는데, 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생처럼 시간표를 직접 짜서 수업을 구성한다. 학교는 다양한 수준의 강의를 개설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강의를 선택해서 듣는 형식이다.

기술ㆍ과학 만능주의로 편중될 수 있는 교육 흐름을 ‘인문학’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지능ㆍ정보기술에 방점이 찍히지만 되레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프로젝트 중심 수업, 과목 신설을 통한 과학과 인문학의 융ㆍ복합을 장려한다. 실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지난 10년 간 69개 학과를 폐지하고 새로운 융합 전공 30개를 만들어 분야 간 활발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산업혁명 수준에 걸맞은 사회 발전을 궁리하는 시민의식ㆍ인성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는 “한국의 인성 교육은 정치ㆍ사회 면에서 주류라고 판단되는 가치를 내면화 하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오염됐다”며 “올바른 민주시민교육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창의적 사고력,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협동심ㆍ공감능력을 지닌 인재” 배출이 가능하다고 주문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계가 잠식할 수 없는 일에 종사할, 미래 사회의 급변을 문화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