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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들은 다 튀었다… 1만6000㎞ 치밀한 도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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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들은 다 튀었다… 1만6000㎞ 치밀한 도주극

입력
2017.02.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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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소환 가능성 전혀 없어

체포된 리정철은 자백한다 해도

후방 지원 역할 그쳤을 수도

김정남 암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북한 국적자 리정철(47)이 18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정남 암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북한 국적자 리정철(47)이 18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의 북한 국적 핵심 용의자 4명이 이미 평양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는 난항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주요 용의자들이 북한 입국에 성공했다면 김정은 정권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경찰이 신병을 확보한 용의자들은 청부를 받거나 제한적 역할만 했다는 주장이 강해 이들에 대한 수사가 곁가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20일 뉴스트레이츠타임스(NST), 더스타 등 말레이시아 매체는 범행을 주도한 리재남(57) 리지현(33) 오종길(55) 홍송학(33) 등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이 사건 당일인 1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국,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7일 북한 평양으로 입국했다고 보도했다. NST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들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두 여성 용의자가 암살을 끝내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3시간 가량 공항에 머문 후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탔다”고 전했다.

북한인 용의자들은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3개국을 옮겨 다니며 나흘 만에 평양에 도착하는 우회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반대 방향인 두바이를 거치는 등 이동 거리만 장장 1만6,000㎞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 베이징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데, 이렇게 가면 10~12시간이 소요된다.

핵심 용의자들이 도주하면서 정확한 배후 파악은 요원해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협력해 이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인터폴에 가입하지 않은데다 말레이시아와도 범죄인인도협정을 맺고 있지 않다. 강제 소환할 길이 없다는 얘기이다. 수사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북한 당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북측 스스로 용의자들의 소재를 파악해 말레이시아로 보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북한 국적 용의자 중 유일하게 체포된 리정철(47)과 외국인 여성 2명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다. 17일 붙잡힌 리정철은 “암살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김정남을 죽인 일이 없다”며 줄곧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리정철이 자백한다 해도 현지 숙소와 차량 제공 등 후방지원만 했다고 하면 배후를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쿠알라룸푸르 교외에 거주하면서 현지 회사에서 일해 주변 지리에 밝았던 리정철은 호텔을 소개하고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데 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교도(共同)통신은 현지 매체들을 인용해 도주한 4명이 사용한 차량은 리정철 소유였다며 그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봤다. 다른 북한 국적 용의자들과 달리 도주하지 않고 집에 머물다 체포된 점, 강하게 저항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등 전형적인 북한 공작원들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항에서 김정남을 덮쳤던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에게도 특별히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들의 구금을 연장할지, 기소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두 여성의 역할을 놓고 고심 중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시신 인도와 관련 “(가족 또는 친지에게) 향후 2주일 시간을 주겠다”고 못박은 가운데 이날 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시신이 어디로 향하느냐도 수사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시신 인수 의사를 밝힌 개인이 없어 북한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상태였다. 시신 부검 결과는 이르면 22일쯤 발표된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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