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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를 만들고 플레이보이로 살다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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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를 만들고 플레이보이로 살다 가다

입력
2017.09.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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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휴 헤프너 91세로 별세

“60년대 성 혁명 이끌어” 평가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가 200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플레이보이 저택에서 발행 잡지를 들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가 200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플레이보이 저택에서 발행 잡지를 들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전 세계 수백만명의 남성들에게 ‘성(性)적 환상’을 심어 준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창업자 휴 헤프너가 27일(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는 이날 성명을 내고 “헤프너가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노환에 따른 자연사로 알려졌다.

플레이보이는 1950~60년대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자유로운 성 문화를 대중화시킨 효시로 꼽힌다. 로이터통신은 “플레이보이는 60년대 성 혁명을 이끌었다”고 규정했다.

헤프너는 1926년 시카고에서 청교도적 삶을 요구하는 교사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종교적 가정 분위기에 얽매였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그가 훗날 성적 일탈을 꿈꾸는 밑바탕이 된다. 헤프너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서 작가 생활을 하는 등 여러 경험을 쌓았다.

그가 플레이보이 창간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48년 앨프레드 킨제이가 펴낸 ‘인간 남성의 성 행동’, 일명 ‘킨제이 보고서’를 만나면서다. 성적 억압이 인간에게 주는 상처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분노와 상상력을 투영할 매체를 만들기로 한다. 어머니와 친구들에게서 빌린 8,000달러를 종잣돈으로 53년 11월 마침내 플레이보이 창간호가 선을 보였다.

당대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를 표지 모델로 내세운 플레이보이 1호는 삽시간에 5만부가 팔려 나가며 대박을 쳤다. 영국 BBC방송은 “헤프너는 사냥이나 낚시 간행물이 고작이었던 당시 남성 출판물 시장에서 틈새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분석했다. 이후 유명 여성 스타들의 누드 사진이 매달 표지를 장식하면서 플레이보이는 성인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엄청난 상업적 성공 덕분에 70년대 초 잡지 월간 발행 부수는 700만부를 넘기기도 했다. 헤프너는 브랜드 창조에도 천재적 재능을 발휘해 플레이보이하면 떠오르는 ‘토끼 그림자’ 로고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생전 ‘플레이보이=외설 잡지’란 세간의 평가를 거부했다. 커트 보니컷,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최고 작가들이 플레이보이에 글을 썼고 피델 카스트로, 마틴 루터 킹 등 유명 인사들과의 심층 인터뷰도 매체에 실렸다. 헤프너는 2002년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나는 플레이보이를 단순한 섹스 잡지가 아니라 섹스를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도한 선정성은 사회 통념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줄곧 비판에 시달렸다. 헤프너는 63년 유명인들의 누드 사진을 출판ㆍ유통한 혐의(음란죄)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알몸 노출 전략은 보수진영과 여성단체의 공격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플레이보이는 80년대 들어 펜트하우스와 허슬러 등 훨씬 선정성이 강한 잡지가 범람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2015년 발행 부수가 80만부까지 떨어지는 등 브랜드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사세 위축에도 헤프너는 2012년 60세 연하 여성과 세 번째 결혼하는 등 자유분방한 삶의 기조를 끝까지 지켰다. 미 사회비평가 카밀 파글리아는 “헤프너는 전후 미국사회에서 분출된 다양한 열망을 수용하는 생활양식을 창조해 냈다”며 “사회 혁명을 견인한 주요 건축가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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