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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우왕좌왕… 공혈견 자율규제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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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우왕좌왕… 공혈견 자율규제 ‘제자리 걸음’

입력
2017.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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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 이야기]

공혈동물 관련 가이드라인이 제정됐지만 전체 반려동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법적 테두리 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펫버킷(petbucket) 홈페이지 캡처
공혈동물 관련 가이드라인이 제정됐지만 전체 반려동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법적 테두리 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펫버킷(petbucket) 홈페이지 캡처

동물도 사람처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수혈을 받는다. 국내에서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 수혈에 필요한 혈액의 대부분은 강원 속초에 위치한 민간업체 한국동물혈액은행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들에게서 얻는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수혈을 위해 약 300마리 안팎의 공혈견과 공혈묘를 사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공혈동물의 관리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공혈동물의 관리 부실(본보 2015년 9월24일자 27면)은 2015년 처음 제기된 이래 계속 확산되고 있다. 당시 국내 공혈동물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으며 사육 조건, 채혈 기준 등 관리 기준이 없었다. 동물병원들도 공혈동물들이 잔반을 먹는 등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 문제를 지적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 채취 및 이를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학대행위로 규정한 동물보호법 제8조 2항 2호의 적용 여부를 검토했다. 하지만 해당 조항에 질병 치료와 동물실험 등을 예외로 두고 있어 공혈동물에 적용하지 못했다.

농식품부와 한국동물혈액은행, 대학동물병원, 동물보호단체 등은 문제 해결을 위해 10여 차례 모임을 갖고 지난해 9월 ‘혈액나눔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하지만 제대로 공포조차 되지 않아 대부분 동물병원들이 이를 모르고 있고,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기준들이 허술하며 법적 구속력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동물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반려견이 공혈견의 혈액을 수혈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동물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반려견이 공혈견의 혈액을 수혈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이드라인은 공혈동물 명칭을 혈액나눔동물로 변경하고 영양 균형이 맞는 사료와 깨끗한 물을 제공하며 채혈시 수의학적으로 규정된 개체별 1회 채혈량 (13~17㎖/㎏)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바닥망 방식의 사육장을 사용할 경우 동물의 발이 빠지지 않아야 하고 바닥망 두께가 3.2㎜이상이 되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동물이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에 널빤지 같은 바닥재를 추가로 깔아주도록 했다.

하지만 케어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혈액나눔동물이라는 용어가 공혈동물을 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며 배설물 처리를 위해 바닥을 띄워 만든 뜬장을 용인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뜬장을 사용하면 동물들의 발이 빠지는 등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동물보호단체들은 사료와 깨끗한 물 제공은 당연한 일인 만큼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킬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의 시행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시행 여부를 한국동물혈액은행의 자율로 맡겨 놓아 제대로 지켜질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동물혈액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잔반 등을 모두 사료로 바꿨고 발판 작업과 오폐수처리장치 구비 등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며 “농식품부에도 개선 내용을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동물혈액공급이 인허가 업종이 아니어서 관리,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처음에 법제화를 검토했지만 업체 하나를 겨냥해 법을 만드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개선이 되지 않으면 다시 법제화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보호단체의 반대도 있고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보완 등 현안과 맞물려 공포가 늦었다”며 “올해 안에 공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공혈동물의 복지 문제가 불거진 뒤 강원대, 전남대 등은 자체 공혈견 제도를 폐지하고 한국동물혈액은행을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 4,000여개로 추정되는 국내 반려동물 병원도 한국동물혈액은행에 의존하고 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헌혈견은 국내 한 대학의 경우 체중 25㎏ 이상의 대형견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혈 수요를 감당할 만큼 대형견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법을 개정해 관련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동물혈액업 신설과 혈액 나눔 권장을 담은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동물혈액업을 신설하면 혈액 매매를 활성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케어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의 기부 헌혈이나 비영리 혈액관리 기관을 통해 수혈용 혈액을 공급한다”며 “매매업을 활성화할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이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위니펙에 위치한 비영리기관인 캐내디언애니멀블러드뱅크(CABB)는 헌헐견을 통해 캐나다 수의사들에게 혈액을 공급한다. CABB 홈페이지 캡처
캐나다 위니펙에 위치한 비영리기관인 캐내디언애니멀블러드뱅크(CABB)는 헌헐견을 통해 캐나다 수의사들에게 혈액을 공급한다. CABB 홈페이지 캡처

동물보호단체, 법조계 등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머문 공혈동물 제도를 법제화해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혈견을 두고 있는 한 수의대 교수는 “공혈동물 관리가 자발적으로 될 리 없다”며 “법적 근거를 갖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허가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도 “전체 반려동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인 만큼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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