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맹하경 기자

등록 : 2017.03.07 04:00

신산업 새 장 열리는데… 한국 창업은 혁신형보다 생계형 치중

4차 산업혁명, 다 바꿔야 산다

등록 : 2017.03.07 04:00

[한국일보-여시재 공동기획]<4>창업 혁명, 생존과 도태의 갈림길

“신생벤처기업(스타트업)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스타트업은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는 속도와 민첩성이 있기 때문이다.” 딜립 순다람 마힌드라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액셀러레이터 통합 데모데이&컨퍼런스’ 기조 연설자로 나서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 창업 생태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2000년 이후 포춘 500대 기업 절반이 사라진 이유는 특정 기술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기간이 대폭 줄어드는 격변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등 새로운 산업의 포문이 열리는 시점에 재빠르게 달려드는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와야 하고 이를 받쳐주는 생태계가 탄탄해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는 지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를 중심으로 업종간 경계를 허무는 신산업 분야 창업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작년 ICT 업계에서만 400만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이는 전년보다 25.5%나 증가한 수준이다. 국내는 2016년 11월 기준 전체 벤처기업수가 3만3,137개로 집계됐다. 물론 양적 규모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은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인재와 시스템 부족으로 창업 선순환 생태계가 미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먹고 살려고” 급하게 뛰어드는 한국 창업자들

중소기업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설법인 수는 9만6,155개로 중기청이 집계를 시작한 2000년이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그러나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도소매업(1,533개 증가) 등은 전년보다 크게 늘어난 반면 전문 기술을 앞세워야 하는 제조업 분야는 1,118개 줄었다. 시장 진입이 쉬워 경쟁이 심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생계형 창업’이 늘어나 전체 수만 불린 셈이다. 창업 시장은 생계형 창업보다 시장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기회 추구형(혁신형) 창업’이 많아야 질 높은 시장으로 평가 받는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생계형 창업 비중은 63%로 미국(26%), 이스라엘(13%) 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혁신형 창업은 21%로 비교대상국 중 가장 낮았다.

투자ㆍ창업에 만연한 ‘안전제일주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로는 AI, 자율주행차, 핀테크, 사물인터넷(IoT)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작년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국내 스타트업들은 미미박스(1,429억원), 우아한형제들(570억원), 레진 엔터테인먼트(500억원) 정도다. 신규 시장을 노리기 보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콘텐츠 등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업종으로만 투자금이 쏠리는 형국이다. ‘창업 심리’도 소극적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창업 기회 발견’(13%)이 매우 낮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42%)은 높게 나타났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기술분야 스타트업 투자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5,000억원대에 우버에 인수된 자율주행 트럭 개발 업체 오토(Otto), GM이 7,000억원에 인수한 자율주행기술회사 크루즈오토메이션 등 해외에선 신산업 분야 성공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IoT 분야만 하더라도 대기업에 하청으로 납품하는 생태계가 굳어져 성장성 높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혁신가를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과 정부”

문제의 핵심은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혁신가를 꾸준히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과 혁신가의 활동을 지지해 줄 환경과 시스템의 미비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경제활동 진입 전 단계의 청년들 대부분이 대학에 가 있지만 대학에서의 창업 교육, 지원 정책 등이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위주”라고 지적했다. 링크사업단, 창업지원단 등 각종 대학 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학생의 아이디어를 보고 지원 방안을 찾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원하는 사업을 정해 두고 이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찾는 ‘거꾸로’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김도현 국민대 교수는 “대학 내 창업 교육 담당자가 실제 스타트업 생태계와 전혀 관련 없이 그저 대기업 출신인 경우도 많다”며 “질적으로 낮은 교육, 창업 담당자에 대한 재교육의 부재, 대학원 연구실의 경직된 문화 등이 얽혀 미세하게 꼬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센터장은 “정부 지원을 받은 경우 예산에 대한 지나치게 깐깐한 감사도 문제”라며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자유롭게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대학 내 안전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확한 방향성 없이 비슷한 지원책만 쏟아내는 정부를 향한 질타도 이어졌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중기청은 지난 1월 청년 창업 선도 대학 확대, 판교 창조경제밸리 구축, 스타트업 경진대회 개최 등 대동소이한 내용을 하루 차이로 발표했다. 스마트창작터(중기청), 창업발전소(문화체육관광부) 등 창업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기관마다 중복된다. 한 센터장은 “정부의 창원 지원 정책만 1,200여개에 달한다”며 “벤처 기업 인증제 같은 자격 제도는 실제 기술가치나 시장의 평가가 아니라 이 자격이 있다는 것만으로 정부 지원금이 쉽게 나와 좀비기업 양산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원책을 늘려 오래 버티도록 돕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성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관행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는 “신용 등급이 떨어져도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술신용평가 제도 이용 기업 중 실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경우는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안다”며 “은행 지점마다 할당이 떨어져 양만 늘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기업이 보통 성장까지 10년 정도 걸리고 벤처캐피털의 투자 후에도 8년 이상 걸리는데 우리 정책은 5년 안에 실적을 내야 하고 담당 공무원은 2년마다 바뀌는 실정”이라며 “진정성 있게 장기적으로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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