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해림
푸드라이터

등록 : 2018.02.02 04:40

[푸드스토리] "소고기, 고기 아닌 요리로 즐기세요"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 새 트렌드로 떠올라

등록 : 2018.02.02 04:40

3종의 위스키가 페어링되는 우라만의 채끝등심(앞)과 안심. 그리고 단품 메뉴인 우라맥.

소고기는 비싸다. 시장 경제의 수요 공급 법칙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이유는 알 수 있다. 맛있지만 귀하고, 그래서 비싸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프리미엄 소고기 외식 시장은 점점 더 비싸지는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소고기 먹는 방법은 순전히 재료 위주였다. 1++ 등급, 또는 그 이상의 엄청난 마블링은 소고기 외식 시장의 첫 번째 프리미엄 가치였다. 동시에 각종 특수부위는 소고기 미식 경험의 척도로서 두 번째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거기에 얼마나 좋은 숯을 쓰는가, 밑반찬과 양념이 무엇이 나오는가 정도가 약간의 가치를 보태는 형태다. 가치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숙성이 대두됐다. 스테이크 식당발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해 이제 시장에 안착한 ‘드라이 에이징’, 그리고 재평가되고 있는 ‘웻 에이징’은 숙성을 통해 재료의 부가가치를 올린, 세 번째 프리미엄이다. 특수부위도 꾸준히 ‘개발’되어 요즘은 등심에 기름층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등심덧살’을 떼서 만든 특수부위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굽은 새우등처럼 생겨 ‘새우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부위다.

등급, 숙성과 부위라는 세 가지 핵심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식당조차도 요리가 아닌, 재료를 내세웠다. 우리는 그간 고깃집에 요리를 먹으러 간 것이 아니라 재료를 먹으러 갔던 것이니 고깃집은 엄밀히 말하면 식당이 아니라 정육점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정육식당’과 고기 전문점의 정체성 차이가 점차 흐릿해지기도 했다.

소고기 외식 시장의 특이점, 프리미엄화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 수린의 다양한 요리, 그리고 첫 순서로 굽는 안심.

이미 또다시 가치 포화 상태에 이른 소고기 외식 시장을 두고, ‘소고기 먹보’들은 더 맛있게 소고기를 먹는 방법을 연구했다. ‘재료를 팔던 것을, 요리답게 팔면 되겠구나’ 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은 식당을 식당답게 했다.

재료가 아닌 요리를 앞세운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 또는 ‘한우 오마카세’라는 부류의 식당들이 등장했다. 강원 횡성군에서 시작해 2015년 서울 신사동으로 상경한 ‘우가’, 그리고 2015년 마장동 ‘본앤브레드’가 등장하며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과 한우 오마카세가 각각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개성과 맛을 뽐내기 시작했다. ‘소꿉’ ‘모퉁이우’, ‘WX’, ‘꿰뚫’ ‘온도’ 등이 그 예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도산공원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일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하이엔드 초밥 전문점 등과 비슷한 가격대로 안착했다. 1인당 10만원대 중반부터 시작되니 주변 파인 다이닝 물가, 또는 기존의 고급 소고기 전문점과 양적, 질적으로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도 아니다.

현담원그릴 장지호 셰프가 코스에 낼 소고기를 준비하고 있다. 현담원그릴 제공.

프리미엄 소고기 전문점이라는 전자의 정의는 기존의 고급 전문점들과의 구분이 다소 모호하다. 이들 전문점의 공통점은 이전의 고깃집들보다 좀더 요리에 치중하고, 소고기 중 가장 맛있다고 이름난 것들을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들여 놓는, 그야말로 ‘프리미엄의 끝’에 있다는 것이다.

색다른 형태는 한우 오마카세다. 초밥 식당에서 그날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초밥 코스를 요리사가 알아서 주도록 ‘맡긴다’는 의미를 차용해 한우도 그와 같이 그날그날 가장 좋은 부위를 요리사가 알아서 코스로 구성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품 요리도 아니요, 고정된 코스 요리도 아니라 한국어에 없는 개념이다. 국내 유통되는 고급 소고기 중 가장 비싼 한우를 오마카세의 형태를 빌어 융통성 있는 코스 요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청담동과 도산공원 일대에서 일었던 하이엔드 초밥 전문점 붐이 지나간 후 초밥 오마카세 코스의 가격이 저가, 중가, 고가, 그리고 하이엔드로 분류되어 ‘시장 민주화’를 이룬 것을 본다면, 재료에 따라 다양한 값이 형성되는 소고기 역시 초밥 오마카세처럼 다양하게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 4 현담원그릴의 소고기 오마카세 코스에 나오는 솥밥. 현담원그릴 제공.

이런 형태의 식당에선 고기만으로 코스가 되지 않는다. 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곁 반찬, 또는 코스의 다른 음식들을 함께 구성해 최적의 흐름을 찾는다. 알다시피 다른 음식 없이 고기만 많이 먹기는 참 힘들다. 특히 마블링이 많은 부위일수록 뒤로 갈수록 물리는데, 오마카세에선 다른 음식을 통해 입맛을 환기시키고 소고기 맛을 끝까지 최적, 최고로 볼 수 있게 한다.

고기가 서 말이라도 잘 구워야 제 맛이다. 고가를 판매전략으로 내세운 일부 고깃집들이나 제대로 교육 받은 직원이 불 곁을 지키고 최적의 상태로 고기를 구워 줬지, 대부분의 고깃집들은 손님이 ‘셀프’로 굽게 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직원에게 불판을 맡겨 고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모처럼 먹는 비싼 소고기를 가장 완벽한 상태로 구워주는 기술을 가진 이가 ‘굽기 전문’ 셰프가 손님 앞에 나서 ‘요리해주는’ 것이 프리미엄 소고기 외식 시장의 경향이다. 초밥 오마카세에서 다찌(바 테이블)에 앉아 초밥을 쥐는 요리사의 손놀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식사의 흥과 기대감이 북돋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개 테이블에 화력원을 두고 눈 앞에서 구워준다.

대표적인 한우 오마카세 세 곳

한우 오마카세를 표방하는 전문점들은 고가에 걸맞은 확실한 고급화, 그리고 명확한 차별화로 각각의 가치를 확보한다. 소고기와 위스키의 조합을 앞세운 ‘우라만’, 한식에 큰 방점을 찍은 ‘수린’, 일본 가이세키의 요소를 차용한 ‘현담원 그릴’을 차례로 소개한다.

▦소고기와 위스키의 조화, 우라만

혼술하기 좋은 바를 갖춘 남산자락의 우라만.

남산자락 외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젊고 쾌활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세 개의 별실이 있고, 단품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바 좌석도 갖추고 있다. 1+ 이상 거세 한우를 3~4주간 웻에이징한다. 향이 적고 온도가 높은 비장탄으로 고기를 굽는데 5~10분간 도마에서 레스팅을 거친다. 에피타이저로 계절에 따라 바뀌는 세 가지 한입거리를 내는데, 요즘은 굴전과 비프웰링턴, 골뱅이 요리가 나온다. 석화를 내기도 한다. 반찬으로는 백김치와 고추, 샐러리 장아찌, 기름에 천천히 익힌 마늘이 제공된다. 화이트트러플 소금, 말돈 소금, 생와사비가 곁들여지고, 처음 나오는 고기는 안심과 채끝등심, 꽃등심, 살치살, 새우살 중 그날그날 좋은 것이 선택된다. 두 번째 고기가 나오기 전에 황태육수를 사용한 크림 보리 리소토 오차즈케를 준다. 대구살 버터구이를 올렸다. 2부 고기는 채끝등심과 양념갈비, 제비추리, 토시살, 새우살, 살치덧살, 살치살, 안창살 중 좋은 것을 서너 가지 제공한다. 고기를 마친 후 메인 식사가 시작되는데 해물과 달래 향이 가미된 된장찌개와 설렁탕, 냉 파스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디저트로는 솔트 캐러멜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3만원이 추가되는 위스키 페어링이 인기인데 웰컴드링크로 올드패션드 칵테일이 나오고, 첫 번째 고기엔 부드러운 향을 가진 위스키, 두 번째 고기엔 강한 향을 가진 것이나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곁들여준다. 세 잔째는 달콤한 향을 가진 버번 류가 주로 매치된다. 단품 중엔 맥도날드 빅맥을 재해석한 100% 한우 버거 ‘우라맥’이 특색 있다.

▦한식이 키포인트, 수린

도산공원의 푸르름이 내다보이는 수린.

도산공원이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위치. 밝고 세련된 분위기로 대개의 한우 오마카세들과 마찬가지로 프라이빗한 룸과 바 좌석으로 이뤄져 있다. 30개월 내외 월령의 1++ 등급의 암소를 사용하는데 3주간 웻에이징한다. 강원도에서 수급하는 참숯을 사용하는데 하향식 덕트를 탑재한 불판을 사용해 향이 강하게 배지 않는다. 비장탄보다 온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은근히 익힌다. 부위에 따라 미디엄 레어, 또는 미디엄 정도로 익혀주고 겉면에 짙은 갈색이 돌도록 시어링을 강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티라이트 캔들로 온도를 유지하는 ‘스타우브’ 주물 냄비에서 2분간 레스팅한다. ‘잘토’의 와인잔과 ‘컷코’의 커트러리를 사용한다. 신안 천일염과 후추가 제공된다. 에피타이저로는 홍두깨살과 청어알젓으로 맛을 낸 고추장 베이스의 육회와 가리비찜이 나오고, 첫 번째 고기로는 안심을 굽는다. 배추 등을 가볍게 젓갈과 올리브 오일에 무친 겉절이, 알타리 백김치, 그리고 세 가지 장아찌가 나온다. 다음으로 채끝등심이 나오고 미니수육과 곰탕도 맛볼 수 있다. 치맛살을 맛본 후엔 차돌박이와 가리비관자와 표고를 꼬치에 꿴 수린만의 삼합이 나오고, 부채살이 이어진다. 소고기 토마토국으로 입안을 정리한 후엔 살치살이 나오고, 갈비살을 다져 넣은 고추튀김이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숯불 닭갈비에, 이천 추청 쌀로 갓 지은 밥과 소고기 된장찌개가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소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한식이 이어져 리듬과 흐름이 좋다. 와인 모임 하기 좋은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가이세키로 경험하는 한우, 현담원그릴

중후하게 완성된 현담원그릴의 바. 현담원그릴 제공

와인바 ‘뱅가’, 하이엔드 초밥집 ‘스시 마이’와 자매 식당으로, 같은 건물에 있다. 세 곳 중 가장 프라이빗한데, 하루에 단 한 팀만 받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이다. 옻칠한 벽이며 길이 잘든 가죽 소파가 놓인 라운지 룸이며, 최고급의 쾌적함을 경험할 수 있다. 잔은 ‘리델’, 커트러리는 ‘라기올’의 최상급 라인을 사용한다. 츠지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가이세키 요리점에서 경력을 쌓은 장지호 요리사가 이끌고 있다. 스시 마이와 메인 주방을 공유하며 초고급 해산물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오마카세를 구성한다. 서비스 방식과 음식의 구성은 가이세키를 차용했지만 음식의 형태는 한식이다. 물김치와 양파 장아찌도 등장한다. 해산물이 3, 소고기가 7의 비중이다. 소고기는 1+ 한우 미경산(새끼를 낳지 않았다는 의미) 암소만 사용하는데, 1++등급에 비해 기름진 맛이 덜하다. 살코기 맛을 즐기는 단골을 위해 1등급도 준비한다. 3주 반에서 5주 사이로 웻에이징한 숙성육을 사용한다. 비장탄에 구운 고기는 주물 냄비에서 구운 시간만큼 길게 레스팅한다. 간수를 뺀 신안 신의도 천일염과 생와사비에 홀스래디시를 섞은 것이 제공된다. 야채즙과 연근칩, 부드러운 달걀찜, 해산물 초회, 모듬회나 소스가 가미된 해산물로 코스가 시작된다. 조개와 채소 구이, 튀김 등 해산물 요리와 따뜻한 수육이 미각을 덥힌 후엔 6-7종류의 소고기 코스가 시작되는데 안심, 등심, 치마살, 부채살, 안창살, 토시살, 업진살, 살치살, 양념갈비 등 다양한 부위를 맛본다. 연어알이나 대게살을 올린 솥밥과 진한 국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제철 과일과 후식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한 번 다녀간 손님의 식성을 모두 기록해둘 정도로 세심한 서비스가 돋보이는 곳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이가은(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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