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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ㆍ담] “개성공단 재가동은 시대적 소명... ‘3통’ 문제 개선은 필수”

입력
2018.05.10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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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월 정도에 재가동돼야

의류 등 내년 신상품 준비 가능

무선전화ㆍ인터넷 제한 없애고

北이 억지 쓰지 못하도록

유명무실한 상사중재 활용해야

개성공단 먼저 제대로 진행 후

제2, 제3 공단 이야기 나와야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사무실에서 본보 조재우 논설위원과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사무실에서 본보 조재우 논설위원과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다가온 현실인가 신기루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후발표한 4ㆍ27 판문점 선언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희망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자본과 기술력,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어우러진 개성공단은 한반도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던 기대 섞인 전망과 달리 남북관계가 출렁일 때마다 폐쇄와 재개를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ㆍ안보적 환경을 보면 남북 평화공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 재가동 등 남북 경제협력은 식어가는 한국 경제의 엔진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지적도 많다.

개성공단 폐쇄로 타격을 입은 120여 개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신한용 회장(58)을 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나 개성공단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신한물산㈜ 대표이사인 그는 개성공단에서 200여명의 임직원과 함께 어망 등 각종 어구를 제조ㆍ판매했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면 개성공단도 재가동될 수 있을까. 가능성을 어느 정도라고 보나.

“100%로 보고 싶지만 희망 사항이다. 재가동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났다고 바로 국제 제재가 해제되는 건 아니다. 9~10월 정도에는 가동이 재개돼야 내년 신상품도 준비할 수 있다. 개성공단 기계설비도 정상화해야 한다. 특히 섬유, 봉제 같은 의류 제품들은 보통 해가 바뀌기 전에 주문을 한다. 끊어진 줄 알았던 바이어들이 개성공단 재가동 조짐이 좋으니 9~10월 정도에만 열리면 주문을 하겠다고 한다.”

-봄 바람은 불지만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

“춘래불사춘 아닌가 생각도 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육ㆍ해ㆍ공으로 남북 왕래를 많이 했다. 그런데 경협인들은 목전에 공단이 있는데도 시설물 점검 위한 월경도 정치적으로 눈치를 봤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3대 경협사업을 재건한다는 발표를 보고 때가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건 지 모르겠다.”

-재가동할 경우 제도나 시설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없나.

“3통 문제 개선은 10년 넘게 경협활동하면서 요구한 사항이다. 3통은 통신 통행 통관이다. 인터넷이 안된다. 무선전화도 안되고 유선전화만 된다. 인터넷이 안되니 주문과 발주가 불편하고 USB로 자료를 저장해 다니는 것도 제한이 있다. 북한 체제가 노출을 꺼려 인터넷을 불허했다. 통행도 3일 전에 미리 신고한다. 사람이 누가 들어가는지 어떤 물자가 들어가는지 차량이 들어갈 때도 차량번호까지 신고한다. 수시로 순발력 있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불편이 컸다. 심지어 상(喪)을 당해도. 통관도 전수검사를 한다. 혹여 서적이 반체제적인 내용이 없는지 검사하고 업체에서 포장할 때 싼 신문지도 반입이 안 된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는 건 또 어찌나 잘 찾아내는지. 찾아 내면 벌금을 물린다.”

-북한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없나.

“결과로 보면 우리가 당한 게 많다. 북한이 억지를 쓰면 우리가 당할 수 밖에 없다. 금강산도 그렇고 기존 경협 사업과 개성공단도 그랬다. 상사중재 제도라는 게 있었지만 활용을 못했다. 우기면 자기네들 입장이 우선이고 우리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상사중재 제도를 기피한 거다. 다시 들어가면 제도화를 시켜 서울이나 평양에서 상사중재 재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정비되어야 악행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협의는 하고 있나.

“늘 협의한다. 통일부에 개성공단 지원기획단이 있다. 그쪽도 우리와 똑같이 희망적이지만 우리보다 아는 것도 없다. 우리가 자체적으로도 해결하고 정부나 당사자, 북한 측과도 협의할 문제다.”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면 인력 충원이 가능한가

“124개 기업에서 수요 조사를 했을 때 2만 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공단까지 두세 시간 출퇴근 거리에 있는 개성 인근 지역 인력이 다 동원됐다. 기숙사를 지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0ㆍ4선언을 하고 내려올 때 기숙사를 짓기로 협의가 됐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2단계를 추진할 땐 반드시 기숙사를 지어서 외부 인력이 들어와야 한다. 출퇴근 버스가 있는데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오니 지쳐서 오전부터 조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외국기업이나 대기업이 참여할 경우 안전망이 형성되지 않겠나.

“개성공단 개발계획에 국제화 단지가 있었는데 거기까지 못 갔던 거다. 워낙 부침이 심하다 보니 중국 기업이나 대기업이 들어오면 마음대로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존 중소기업이 역차별을 당할 소지도 있다. 공단 내에서 나름 직원들은 이동의 자유가 있었다. 심지어 초코파이 몇 개 더 준다고 회사를 옮기기도 했다. 입주기업 중 섬유ㆍ봉제가 60~70% 된다. 외국기업이나 대기업이 오면 그쪽으로 인력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경제특구가 20여 개 정도 조성되어 있으니 대기업은 그리 가면 된다. 굳이 대기업을 개성공단에 넣어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사들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 같다. 파산한 기업도 있다는데.

“파산하고 싶어도 못한다. 6개월 전 법원에 파산 신청한 기업이 있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15개 업체들이 열중쉬어 하고 휴업도 파산도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개성공단이 베트남과 중국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 뭔가.

“인건비가 장점이다. 그쪽에서는 급여를 생활비라고 얘기한다. 기본급이 75달러지만 부가적으로 나가는 게 더 많다. 초코파이나 각종 지원 등을 따져보면 실제로 250달러다. 베트남이나 제3국은 줄 거만 주고 만다. 북한은 하나 주면 두 개 달라, 두 개 주면 세 개 달라는 요구가 있다. 한 번 주면 끝나는 게 아니다. 북한 측에서는 계속 요구하니 상당히 피곤한 상황이다. 그래도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력도 양질이다. 언어도 잘 통한다. 아침에 제품이 나오면 오후에 백화점에 출시된다. 그런데 우리가 그냥 돈만 벌러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북한 노동자와 매일 살 붙이며 살다 보니 사돈의 팔촌보다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다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생기더라. 내가 지금 나이도 이렇게 먹었는데 더 바랄게 있나.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얘기도 있다. 기업하면서 세금도 내지, 아무도 가지 않는 그곳에서 일하며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못하다. 북한에 퍼준다, 원조 경영이다, 심지어 종북기업이라고 한다. 그런 얘기 들으면 속상하다.”

-개성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과거에 경협사무소란 이름으로 있었다. 개성공단 내 한 건물에 북측 요원과 남측 요원이 있으면서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경제협력할 수 있게 사업을 공동조사하고 연구하는 사무소가 있었다. 2008년으로 기억하는데 이명박 정부 초기인 3월에 돌연 철수를 했다. 그 당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자극하는 말을 했다. 잠깐 철수하는 줄 알았는데 영원히 철수했다. 다시 재개한다면 상징성이 크고, 특히 개성이라면 개성공단이 국제수준이기 때문에 굳이 개성 시내로 갈 일이 있겠나.”

-우리가 경제적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는 북한의 개방이나 통일 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다.

“짐 로저스라고 세계적인 투자가가 있다. 10년 전에 싱가포르로 가족을 데리고 와 살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미래가 있다고 온 것이다. 이 사람이 IMF 사태도 예언했다. 이번에는 한반도에 이목이 집중될 거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를 주적(主敵)관계로만 보면 미래가 없다. 지금 우린 2%대 성장도 안 되는데 북한은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3.9%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북한을 끌어안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잡으려 해도 멀어지지 않겠나.”

-제2, 제3의 개성공단 설립 얘기가 나온다. 특히 파주에 제2 개성공단을 만들려 한다는데.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지만 공식적으로 얘기하면 책잡힐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 협회의 공식 논의거리로도 안올린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나. 단 정책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나들섬 공약부터 시작됐다. 나들섬이 임진강 하류에 있는 섬인데, 우리 땅이다. 당시 개성공단이 가동 중이었는데 나들섬에 공단을 조성해 북한 인력을 동원하겠다는 공약을 하다 환경단체,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임태희 비서실장이 파주에 경제 통일특구를 만들어 북한 인력을 동원하겠다고 했다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에 쑥 들어갔다. 북한 인력을 출퇴근시키기도 어렵고, 내려오면 최저임금을 적용시켜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얘기한 거다. 개성공단 사업이라도 제대로 진행하고 2단계, 3단계 사업을 확충하는 게 좋지 않겠나.”

인터뷰=조재우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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