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원일 기자

등록 : 2017.04.21 20:00
수정 : 2017.04.21 22:06

단독범행ㆍ권총 발사ㆍ자전거 도주… 은행강도 공식 깨 경찰 당혹감

등록 : 2017.04.21 20:00
수정 : 2017.04.21 22:06

경북 경산 권총은행강도 사건 용의자

신원 철저히 은폐ㆍ치밀한 수법

깔끔한 각본 짠 듯 계획범죄 정황

“담아, 휴대폰, 안에” 달랑 세 마디

외국인 노동자? 연막작전? 분분

자전거→차량 갈아타고 도주?

경북 경산 권총은행강도 사건의 범인이 20일 범행 직전 자인농협 하남지점 옆 공터에서 자전거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에 찍혔다. 연합뉴스

‘사전답사 55분, 철저한 신원 은폐, 절제된 발언, 권총 발사, 고액권만 탈취, 단독범행 4분, 자전거 이동, 폐쇄회로(CC)TV 없는 농로로 도주.’ 20일 백주대낮에 발생한 경북 경산 권총은행강도 사건의 치밀한 범행수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깔끔한 각본으로 짠 듯한 계획범죄 정황에, 수사 혼선을 유발하는 각종 미스터리로 범인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은행강도 사건에 이례적으로 총성이 울리면서 우리나라가 총기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여러 공범과 더불어 흉기로 협박해 10분 정도 돈을 챙긴 뒤 차량 등 신속한 도주수단을 이용하는 기존 국내 은행강도의 공식도 깼다. 경찰은 사건 하루 만에 현상금을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렸다.

21일 경북 경산경찰서는 전날 범인이 자인농협 하남지점에서 챙겨간 돈은 1,563만원이라고 밝혔다. 실내 CCTV와 인근 자동차 블랙박스 등을 분석한 결과, 범인은 키 175~180㎝가량에 상하의 모두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도주 동선을 쫓고 있지만 CCTV 등이 없는 농로로 달아난 것으로 보여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사건 당일 오전 11시55분 권총을 들고 농협에 들어서기 직전 약 55분 정도 주변을 살폈다. 청원경찰 유무, 손님 숫자 등을 파악한 후 손님이 뜸한 점심시간 무렵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점은 직원 3명이 상주하는 소규모 점포로 청원경찰은 따로 두지 않았다.

범인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장갑을 사용해 지문 한 점 남기지 않았다. 단독범행인데도 직원들을 금고에 가두고 현금을 쓸어 담아 달아나는데 단 4분 걸렸다. 심지어 1,000원권은 골라내고 고액권(5만원 100장, 1만원 1,063장)만 챙기는 여유까지 부렸다. 범인 급습 즉시 신고가 이뤄졌지만 경찰 출동엔 7분이 걸렸다.

범인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돈) 담아” “휴대폰 (치워)” “안에 (들어가)” 등 3마디만 했다는 게 농협 직원들 증언이다. “억양의 특이점은 알 수 없지만 말투가 어눌했고 몸짓을 많이 썼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부품공장, 인근 축사 등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 특성(경산시 등록 외국인 3,100여명)상 범인이 외국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연막이라는 추론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사건 발생 전 범인 복장과 비슷한 차림의 동남아계 남성을 농협 화장실에서 봤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범인이 사용한 권총의 정체도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장에 떨어진 탄피 분석 결과, 탄환은 미국 회사에서 만든 정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탄피에 ‘ec43’이라는 생산정보가 새겨져 있었다”며 “미국 에번즈빌사의 고유코드로 1943년에 생산된 45구경(지름 11.43㎜) 탄환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다만 사용한 권총은 사제 총일 수도 있다. 정진언 경찰청 총포화약계장은 “정식 탄환이라 하더라도 구경 등이 맞으면 사제 총으로도 발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발사된 탄환의 위력도 사제 총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사제 총은 부품이 정밀하지 않아 그만큼 위력이 떨어진다. 실제 탄환은 서버로 들어가는 유리문 파편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유리를 뚫고 서버에 박힐 만큼 위력이 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면 정품 권총으로 쐈더라도 탄환이 오래돼 위력이 떨어졌을 확률도 있다.

범인이 자전거를 도주수단으로 사용한 것도 수사에 혼선을 빚고 있다. 하남지점에서 150m가량 떨어진 농장의 CCTV에는 범인이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이 잡혔다. 농로가 여러 갈래로 뻗은 이후 행적은 모른다. 이영동 경산서 수사과장은 “차량 번호판 등으로 인한 노출, 좁은 골목과 농로가 많은 지역 특성상 자전거를 1차 도주수단으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량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실제 권총이 은행에서 발사된 건 최근 10년 내 처음이고, 단독범행인데도 경찰 도착 전에 돈을 챙기고 직원들까지 금고에 가둔 후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해 빠져나가는 등 여러모로 당혹스러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시민 제보 확인 및 탐문 수사, 드론 투입, 통신 수사 등 다각도로 범인을 쫓고 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경산=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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