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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에게 슬퍼할 자격이 있을까

입력
2018.04.26 18:3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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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 분향소로 향하던 4월 그 어느 참혹했던 날, 비는 참 구슬프게 내렸고, 길게 늘어선 시민들의 숙연한 뒷모습은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분향을 위해 두 손으로 맞잡은 창백한 하얀 국화처럼, 나와 시민들의 마음과 몸짓은 창백했다.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보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소망과 추모의 벽에 아로새긴 시민들의 간절함을 읽어 내리면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 슬픔, 미안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들은 며칠째 특검 도입과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혔을까.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불현듯 우리가 정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우리에게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독재 정권에 대해 공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정치인, 지식인, 시민이 있는 사회에서,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었을지도 모른다.

독재 정권에 의해 소리 없이 잡혀가고, 고문받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과 가족의 슬픔과 통곡은 경제성장이라는 집단적 환각 장치에 의해 잊히기를 강요받았다. 독재 정권 시기 이룩한 경제 성장은 절대다수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했다고 강변하는 사회에서는 그 소수의 희생을 대가로 먹는 밥술에 대한 어떤 반성도 없었다.

한국 근대화의 역사는 그렇게 인권을 유린해도 민주주의를 억압해도 밥만 먹을 수 있다면 괜찮다는 것을 가르쳤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가시적 결과만을 최고로 치며, 어떻게든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해 모든 편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살길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참사의 근원은 무능한 집권세력에 있었지만, 일부 선원들의 행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들과 가족들의 안위를 책임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책임을 다했다면, 국가는 그들의 부모와 자녀를 그들처럼 돌볼 수 있을까?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젖은 돈을 말리던 선장의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던 것은 바로 그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스스로 살길을 찾아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의 당연한 결과였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아이의 성적과 노동시장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으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하고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은 사치이자 주제넘은 일인지도 모른다. 돈 많은 자, 권력 있는 자의 혹독한 ‘갑질’과 폭력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시장에 팔지 않고는 도대체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사회가 돈 벌기를 멈추어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과 존엄을 보장해 주었다면 반복되는 갑질과 인권유린도, 그 행위에 침묵하는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갑질과 인권유린이 일상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돈과 권력 있는 그 사람들이 타고 날 때부터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인권과 삶에 무관심한 그들의 행위는 바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고, 경제 성장을 위해 민주주의, 인권, 복지국가를 좌초시킨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슬퍼할 자격이 있을까?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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