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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오솔길의 진짜 주인이 ‘오소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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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오솔길의 진짜 주인이 ‘오소리’이길

입력
2017.04.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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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오소리는 작은 귀와 눈에 비해 큰 코가 인상적이다. 앞발을 사용하여 땅을 잘 파헤치는 오소리의 특성 때문에 앞발의 발톱은 상대적으로 매우 길다. 김영준 제공
새끼 오소리는 작은 귀와 눈에 비해 큰 코가 인상적이다. 앞발을 사용하여 땅을 잘 파헤치는 오소리의 특성 때문에 앞발의 발톱은 상대적으로 매우 길다. 김영준 제공

얼마 전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 오소리가 출현해 세 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유 없이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사람을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길 잃은 오소리는 매우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을 것입니다. 사실 오소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사나운 동물입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족제비과 중에서는 몸집이 큰 축에 속하며, 가장 사나운 이빨을 가졌지요. 땅딸막하고 다부진 체구에 저돌적인 성격이라 사냥개도 쉽게 덤비질 못하는 동물입니다.

오소리의 학명은 Meles leucurus(아시아오소리)입니다. 예전에는 Meles meles(유럽오소리)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오소리를 한 데 묶었지만 지금은 아시아오소리를 따로 분류합니다. 학명의 Meles는 '오소리'를 뜻하고 leucurus는 '흰 꼬리'를 뜻합니다. 유럽오소리보다 털 색이 더 바래 하얗게 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 자란 오소리의 모습. 오소리는 굴 파기의 귀재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홈페이지 캡처
다 자란 오소리의 모습. 오소리는 굴 파기의 귀재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홈페이지 캡처

사실 족제비과인 오소리와 개과인 너구리는 모습이 언뜻 비슷해 일반인들은 잘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눈에 띄는 가장 큰 차이는 몸통 색깔입니다. 오소리는 겉 털의 끝색이 흰 편이라 전체적으로 하얀 반면, 너구리 겉 털의 끝색은 검은색입니다.

오소리와 너구리는 발 모습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소리와 같은 족제비과 동물은 일반적으로 발가락이 다섯 개라 개과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소리는 특히 앞 발톱이 잘 발달해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곰과 같습니다. 주로 산이나 구릉에 서식하면서 앞발로 굴을 파는데 8~10m 길이로 파기도 합니다.

개과 동물인 너구리의 발가락은 4개(왼쪽)로 발바닥은 검정색이며, 족제비과 동물인 오소리의 발가락은 5개며 발바닥은 흰색이다(왼쪽 사진). 오소리(왼쪽)의 꼬리털 끝색은 흰색인 반면 너구리의 털 끝색은 어두운 편이다. 김영준 제공
개과 동물인 너구리의 발가락은 4개(왼쪽)로 발바닥은 검정색이며, 족제비과 동물인 오소리의 발가락은 5개며 발바닥은 흰색이다(왼쪽 사진). 오소리(왼쪽)의 꼬리털 끝색은 흰색인 반면 너구리의 털 끝색은 어두운 편이다. 김영준 제공

오소리의 번식에서 독특한 점은 수정란의 착상지연입니다. 착상지연은 수정란이 자궁내벽에 붙어 자라지 않고 일정 기간 자궁 내에서 유영하며 지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발굽동물 중 노루에게서 보이는 현상이지만, 곰이나 박쥐같이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나 족제비과 동물에게서도 간혹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잠을 잘 때 영양상태가 좋다면 당연히 수정란을 발육시켜 태아를 키우지만, 항상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오소리에겐 수정란을 그냥 흡수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려는 전략일 수도 있죠.

오소리는 족제비처럼 사냥을 전문으로 하거나, 담비처럼 나무를 잘 타거나, 수달처럼 헤엄을 잘 치지 못합니다. 천상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땅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땅을 잘 파고 굴도 잘 짓습니다. 살 집이 마련돼있으니 멀리 다니지는 않고, 반복적으로 서식지를 오가며 지냅니다.

오소리 굴. 안에서 파낸 흙을 밖으로 긁어낸 모습이다. 김영준 제공
오소리 굴. 안에서 파낸 흙을 밖으로 긁어낸 모습이다. 김영준 제공

오소리의 식성을 비유하자면 작은 장갑차와 같은데요. 오소리는 큰 먹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거의 채집생활에 의존합니다. 떨어진 과일, 지렁이, 뱀이나 달팽이 등의 무척추동물을 비롯해 파충류, 양서류, 소형 포유류까지 걸리는 족족 먹어 치우죠. 그러다 보니 먹이활동은 각자 떨어져서 하지만, 버찌 등 과일이 떨어질 시기에는 가족군 단위로 같이 다니기도 한답니다. 또 다니는 길 사이사이에 조그만 굴을 파서 배설을 해둡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행동이기도 하거니와 이 배설물에 꼬이는 곤충을 먹는 방법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같은 길을 반복해 다니고, 이렇게 만들어진 길은 다른 동물들도 같이 사용합니다. 동물들이 다니기 좋은 길들이 자연스레 다져지면서 하나의 길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를 오솔길이라 합니다. '오소리길'의 준말이죠.

한편 같은 길로 다니는 습성은 오소리에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한데요. 우리나라 생태계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거의 없는 오소리의 적수는 밀렵꾼들입니다. 밀렵꾼들은 오솔길 위의 활동 흔적이나 잘 파진 굴을 찾아내 올가미를 씌우거나 오소리들이 겨울잠 자는 굴에 불을 때 밀렵을 합니다. 사람의 몸보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오소리가 다니며 만든 그 좁다란 오솔길에서 풀 내음을 맡으며 산뜻 산뜻 걸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혹시 압니까, 오늘 아침 막 싸놓은 따끈한 검정 똥을 볼 수 있을 지도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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