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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본토서 자취 감춘 데빌, 태즈매니아 야생 공원서 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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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본토서 자취 감춘 데빌, 태즈매니아 야생 공원서 명맥

입력
2018.03.23 14: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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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그림 1한 때 호주 전역에 서식했지만 이제는 멸종위기에 놓인 태즈매니아데빌.

호주 남쪽 태즈매니아 섬에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Tasmania Devil Unzooㆍ이하 언주)’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단숨에 날아갔다. 동물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던 중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주(unzoo)에는 동물을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보는 전통적인 동물원 개념에서 벗어나, 서식지와 가까운 곳에서 야생동식물과 생태계에 대해 배우는 장소라는 뜻이 담겨 있다.

태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언주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으며 입구로 들어갔는데 마침 설립자인 존 해밀턴 씨를 만났다. 멀리서 찾아왔다고 하니 친절하게도 직접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태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에 위치한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의 존 해밀턴 설립자가 태즈매니아 데빌의 관찰카메라를 확인하고 있다.
태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에 위치한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의 존 해밀턴 설립자가 태즈매니아 데빌의 관찰카메라를 확인하고 있다.

해밀턴 가족은 1978년 과수원 부지를 사서 이듬해 태즈매니아의 동식물을 소개하는 공원을 열었다. 이후 태즈매니아 데빌(이하 데빌) 보전에 힘써왔다고 했다. 원래 호주 전역에 서식하던 데빌은 호주의 유대류이자 육식동물로,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태즈매니아가 섬이 된 후, 본토로 천적인 딩고가 들어왔고 결국 데빌은 본토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태즈매니아에만 남게 됐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데빌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전염이 되었는데 주로 얼굴과 목에 큰 혹이 생겼고 이로 인해 결국 데빌 개체 수의 95%가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해밀턴씨는 그때부터 전염되지 않은 데빌들을 구했다. 지금도 야생 복원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한 데빌들을 보호하는 한편, 서식지에 설치한 카메라로 주변의 개체들을 파악하고 질병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동물원(zoo)’을 벗어나기 위해 언주는 가능한 모든 울타리를 없애고 지역 야생동물을 위해 토종 식물들을 심었다. 야생동물들은 자유롭게 이곳을 오고 간다. 2010년 대부분의 울타리는 없앴지만 여전히 일부 오래된 울타리들이 남아있었다.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는 전통적 동물원 개념에서 벗어나 야생동식물의 서식지와 가까운 곳에서 야생동식물과 함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태즈매니아 데빌 언주는 전통적 동물원 개념에서 벗어나 야생동식물의 서식지와 가까운 곳에서 야생동식물과 함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언주의 한쪽은 바다와 연결돼 있었다. 해밀턴씨를 따라 한쪽 끝으로 가니 흰배바다수리(White-bellied sea eagle)를 만날 수 있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아주 먼 곳에 바다수리가 만들어 놓은 둥지도 보였다.

언주를 둘러보며 미래의 동물원이 나아갈 방향은 규모를 늘리고 이국 동물들을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동물들을 위해 서식지를 지키고, 그 동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생태계를 보여주며 사람들이 이를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었다.

동물원이 동물을 사람에게 데리고 왔다면, 언주는 사람을 동물 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우리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갈 기회가 아직 남아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글ㆍ사진=양효진 수의사

필자 소개=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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