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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입력
2018.04.13 17:3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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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등이다. 그중 가장 편한 상사는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고, 회사 입장에서 바람직한 인재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일 것이다. 어쨌거나 최악은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일을 벌이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뭔가를 제대로 알고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고 있는 지식이 오류인 경우도 많고, 어설프게 알거나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믿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 기고나 발표에서 4차 산업혁명을 4차 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보ㆍ의료ㆍ교육 서비스 등 지식집약형 산업을 4차 산업이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4차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제대로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근대철학에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양대 산맥이 있다. 경험주의의 원조는 베이컨인데 그는 ‘경험을 통해 직접 관찰하고 실천하며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는 것은 힘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모르면서 안다고 믿거나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고(知不知尙矣),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다(不知不知病矣)” 사실 아는지 모르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오죽하면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혜”라고 설파했겠는가.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성장한다. 교육의 목적은 모르는 사실과 지식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지식 암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아인슈타인에게 한 기자가 기습적으로 ‘음속 값은 얼마인가’를 질문했는데, 이 천재 과학자는 재치 있게 이렇게 답했다. “저는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일부러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맞다. 꼭 담아둬야 하는 지식만 선별해 머리에 담아두는 것도 삶의 지혜다. 그런 점에서는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나 지식이 있는 곳을 아는 것”이라고 했던 새뮤얼 존슨의 충고가 유용하다.

나는 뭘 알고 있고 뭘 모르고 있는가, 내가 아는 것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신전에 씌어져 있던 말이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이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는 신에 비해 인간은 하찮은 존재고 그래서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깊어도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으며, 어떤 과학지식도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과학지식도 부단히 변화하고 진화한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의 의미에 대해 “과학의 힘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라고 설명한다. 안다고 믿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 거기서부터 새로운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과학적 사고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모르는 데서 앎이 생기고, 아는 데서 다시 모르는 것이 생겨나는 법이다. 존 아치볼트 휠러라는 과학자는 “지식이라는 섬이 조금씩 커질수록 무지라는 해안선도 따라서 늘어난다”고 말했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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