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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준석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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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준석을 위한 변론

입력
2012.01.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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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위원장이 의혹 검증을 피한다면 나도 찍지 않겠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털고 가야 한다." "디도스 사건 검찰수사가 의혹을 해소 못한 만큼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 "(최구식 의원 동정 분위기에)한나라당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다."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연일 쏟아내는 말들이다. 낡은 권위와 사고로 쌓아 올린 보수여당의 완강한 성채 안에서 일찍이 없던 도발적 발언이다. 당 지도부 자격인 만큼 그의 말은 복잡한 절차나 여과과정 없이 그대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봄날 대청소 때 세찬 물줄기가 찌든 간판 때를 여기저기 하얗게 벗겨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헌데 이 스물여섯 청년을 보는 눈길이 대체로 곱지 않다. 여느 진영 다 마찬가지다. 보수진영이야 기존의 틀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는 데 대한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고, 진보진영은 난데없이 자신들의 고유영역이 침범 당하고 의제를 뺏기는 데 대한 당황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입장은 다르지만 같은 정서가 깔렸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전여옥 의원의 "애들까지 정치에 끌어들여야 하냐"는 개탄이나, 김어준 대표의 "젊은이,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네"한 충고 등에서도 느껴지는 정서다. 못마땅한 반응들에 문득 시정의 시비가 겹친다. "너 나이 몇 살이야?" 애당초 발단이 뭐였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먹은 밥그릇 수로 다투는 모습이다.

지난 10ㆍ26 재보선의 최대 변수는 지역도 계층도 아닌, 세대였다는 게 모든 분석가들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당시 2030세대의 박원순 후보 지지율은 70%를 넘었다. '99%의 분노' 내용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의 정서를 이해하고 끌어안지 않고는 정치의 미래는 없다"고 얼마나들 외쳐댔던가. 그래 놓고 정작 젊은이가 목소리를 내니까 혀를 차는 건 기막힌 모순이다.

이준석은 이런 반성의 결과물이었다. 젊은이를 꼭 중책에 앉혀야 하냐는 반문도 있지만, 우리 정치의 고답적 위계구조에서 권한 없는 목소리에 누가 주목할까? 평소에 누구에게나 그렇게 귀를 열어놓았다면 애당초 정치의 위기도 없었을 터이다. 대표성 여부도 시비할 것 없다. 어차피 선출직들의 대표성도 제한적이거니와, 20대라면 아직 계급적 정체성도 성립되기 전이다. 똑똑하고 건전한 또래면 족하다.

그가 어려서 경박하다든지 두루 식견이 얕다고 폄하할 것도 아니다. 시중 여론이 원래 보편적 사고와 전문적 분석의 결과물은 아니다. 대개 상식적 수준의 느낌일진대, 때론 비합리적이기도 한 이 여론을 도무지 체감하지 못한다는 게 기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었다. 따지고 보면 숱한 비전문가들이 온갖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툭툭 던져대는 인상비평 한두 마디로 SNS시대의 스타가 돼 행세하는 판이다. 전문가적 식견과 해결책 제시는 그의 몫이 아닐뿐더러 기대할 것도 아니다. 그랬다가는 진짜 걱정되는 애들 세상이 된다.

젊은 목소리는 필요하되 얕은 지혜와 짧은 경륜이 걸린다면 영국 등 다른 정치선진국처럼 일찌감치 재목을 단련하고 키우는 정치충원시스템 구축을 고심할 일이다. 제대로 훈련 받은 일도 없이 대중 인지도나 실력자와의 연줄 등에 따라 하루아침에 정치인으로 심어지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누구도 다만 나이 때문에 이준석 위원에게 뭐라 할 입장이 못 된다. 다 정치 그르친 제 업보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옳다.

어쨌든 박근혜 위원장은 어느 편에서도 달가워 않고 본인에게도 양날의 칼이 될, 해 볼만 하지만 위험한 실험판을 벌였다. 많은 국민도 아직은 냉소적이거나 판단중지 상태다. 혹 부담스러워진 이준석이 제대로 뛰어 놀지 못하게 틀에 가두려 들거나, 그의 시원하지만 거친 제언들을 정교하게 현실정책으로 다듬어내지 못하면 곧바로 박 위원장 본인이 심각한 상해를 입을 것이다. 그건 우리 정치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준석 실험의 성패는 이준석이 아니라 박근혜에 달렸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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