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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귀한 자식’보다 ‘평등한 시민’으로

입력
2017.02.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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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들이 함부로 하는 고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리도 귀한 자식” “남의 집 귀한 딸, 귀한 아들”이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일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고객이라는 이유로 왕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착각하고 왕 노릇을 하려는 고객들도 많이 있다. 어쨌든 이 티셔츠는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고객들을 자제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씁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기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귀한 자식’이 자기 집에서는 혹시 자기 엄마, 아빠에게 ‘자식은 왕’인 것처럼 대우를 받고 자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들은 반드시 ‘귀하게’ 자라야 할까? 자식이 ‘귀한’ 존재이면, 귀하게 자라기 위해서 부모의 너무 큰 희생이 따르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물론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줄 수밖에 없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관계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존중, 서로에 대한 배려, 평등한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너무나 ‘귀한 자식’으로 자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귀하게’ 자라서 평생 ‘귀하게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회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협동과 양보, 배려가 필요하고, 자라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따른다.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없으며,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소소한 노동이 필요하다. ‘귀한 자식’으로 자라서 귀하게만 자라온 사람은 사회에서도 가족으로도 환영 받기 어렵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소소한 노동으로 이루어지는지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일상은, 실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빨래, 설거지,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등 끊임없는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그 일들은 먹이기, 입히기, 씻기기, 기저귀 갈기, 재우기, 놀아주기까지 추가된다. 인생에서 겉으로 보이는 멋진 일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일상은 실은 ‘뽀대’ 나지 않는 수많은 노동의 연속이다. ‘귀하게만’ 자라서 이러한 노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아가는 데 평온할 리 없다. 자기 밥 먹은 그릇 하나 치우지 못하거나 빨래통에 빨래를 넣지 못하는 배우자를 보고 열이 받았다면, 아이는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 한다.

또 ‘귀하게 자란 자식’들이 본인을 ‘왕’으로 생각하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평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문화는 부족하다. 뉴스에서 종종 접하는 재벌 3세의 난동 사건들도, 서비스 업종에서 고객들의 횡포도, 사람을 함부로 하는 문화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하루 아침에 정착되지는 않겠지만, 가정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귀한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아이를 ‘왕’ 대접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자라면 엄마의 일, 아빠의 일도 돕고 자기 앞가림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는 궂은일도 할 수 있으며. 평등한 시민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모두 ‘귀한 자식’이 아니라 ‘평등한 시민’일 때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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