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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훈련 메카 한라산…설경도 위험도 히말라야급

입력
2017.02.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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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린 눈으로 한라산이 장관이다. 산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겨울철의 산을 최고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눈으로 뒤덮인 겨울의 한라산을 1년 내내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다. 해외의 고산원정을 준비하는 산악인들이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한라산에서 적설기 훈련을 꿈꾸며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적설기 훈련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는 산악인들.
적설기 훈련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는 산악인들.

왜 이처럼 많은 산악인들이 겨울 한라산을 찾을까. 적설기 훈련에 나서는 산악인 대부분은 해외의 고산 등반을 목표로 하는데 히말라야를 비롯한 해외의 고산과 겨울 한라산의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라산의 거센 눈보라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은 히말라야 등 극지를 탐험하려는 산악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훈련코스로 정평이 나 있다. 한라산은 그 높이에서도 육지부의 산과 차이가 나지만 산 자체가 바다에 위치해 고산과 해양 기후가 함께 나타난다.

이와 함께 맑은 날씨였다가 순식간에 1m 앞도 안 보이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나타나는 등 겨울 한라산의 날씨는 예측을 불허한다. 화이트 아웃(white out)이란 겨울철 악천후에 가스가 가득하여 주변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공간의 경계 구분이 어려워 행동 장애를 초래하거나 길을 잃어버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고산에서는 심한 경우 눈 처마를 잘못 밟거나 크레바스 등에 빠질 수도 있다. 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헤매는 환상방황도 이런 날씨에서 자주 발생한다. 필자의 경우 지난 2001년 장구목에서 훈련 중인 산악인들이 눈사태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 당시를 체험했다. 1m 앞의 일행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순간적으로 가스가 트인 상태에서 보니 눈 처마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겨울 한라산은 아름다운 설경만큼 위험 요인도 많다.
겨울 한라산은 아름다운 설경만큼 위험 요인도 많다.
한라산 눈꽃 등반엔 안전장구와 비상의류가 필수.
한라산 눈꽃 등반엔 안전장구와 비상의류가 필수.
겨울 산악훈련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는 산악인들.
겨울 산악훈련을 위해 한라산을 오르는 산악인들.
한라산에서 적설기 훈련을 하는 산악인들.
한라산에서 적설기 훈련을 하는 산악인들.

한라산의 눈은 육지부의 산에 내리는 눈과 다르다. 흔히 습설(濕雪)이냐 건설(乾雪)이냐를 따지는데, 한라산의 눈은 습설이다. 건설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내리는데, 가루 형태이기 때문에 잘 뭉쳐지지 않는다. 반면 습설은 영하 1도 내외에서 내리는 눈으로 함박눈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라산은 낮에는 기온이 상승해 진눈깨비가 많이 내리고, 습설이 녹아 옷이 젖으면서 마르기 전에 얼어붙으므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 상태에서 바람마저 분다면 치명적이기에 비상의류 등은 필수다.

특히 장구목은 겨울철 적설기 훈련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러셀과 글리세이딩(glissadingㆍ빙설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기술) 훈련의 적지이기도 하다. 러셀(russel)은 적설기 등반에서 선두가 깊은 눈을 헤쳐 나가며 길을 뚫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눈길 뚫기, 눈 다지기, 눈 헤쳐 나가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적설량이 정강이 이하일 때에는 그냥 걸어가듯이 헤쳐 나가면 되지만, 무릎 이상 빠질 때에는 무릎으로 눈을 다져가며 운행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피나 스키를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고산에서는 슬립이라 하여 경사면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인데, 한번 슬립되어 구르기 시작하면 숙련된 등산가도 확실히 정지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슬립이 시작되는 시점에 빙사면에 피켈(얼음도끼)을 박아야 한다. 이때 실패하면 정지할 수 없기 때문에 꼭 자일로 연결해서 등반해야 한다. 앞뒤 사람이 자일로 연결하는 것을 안자일렌(anseilen)이라 부른다. 이 역시 훈련하기에는 장구목이 제격이다.

한라산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저지대에서는 완만하게 보여 산행에 나서는 많은 이들이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평상시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일순간에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폭풍설 등 무서움 모습도 함께 있음을 늘 잊어서는 안 된다.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얘기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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