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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찬스’도 못 쓰는 탈북여성의 ‘육아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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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찬스’도 못 쓰는 탈북여성의 ‘육아 굴레’

입력
2018.03.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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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 육아 때문에 구직 포기

일반 여성은 감소 추세… 7%대

가부장적 北 분위기 탓 있지만

가족 떠나와 ‘독박 육아’ 불가피

“자립ㆍ정착 위한 육아 지원 절실”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2017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육아로 인한 취업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2017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육아로 인한 취업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육아 굴레’는 여성 북한이탈주민에게 더 가혹했다. 아이 키우느라 구직에 나설 엄두조차 못 내는 이들이 일반 여성보다 훨씬 많았다. 가족을 등진 탓에 대다수가 ‘친정엄마 찬스’도 쓸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실질적 자립과 정착을 위해 육아 관련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여성 탈북민의 경우 42.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탈북민(28.1%)보다 14.2%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왜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지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통해 짐작 가능한데, 여성의 경우 ‘육아 중’(28.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추산해 보면 전체 탈북 여성의 12.1%가 육아로 인해 취업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들은 육아ㆍ생계 노동을 병행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을 가능성 역시 크다.

이는 일반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추세와는 거리가 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12∼13% 수준이었던 육아 목적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은 2003년 10%대로 떨어진 뒤 2010년까지 등락을 반복하며 10%선을 오르내리더니, 2015년 들어 8%대로 떨어졌고 지난해 초부터는 7%대까지 내려앉았다.

탈북 여성들이 일을 하기 싫어 안 하는 건 아니다. 탈북민 10명 중 9명(89.5%) 꼴로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게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이는 2015년 조사(85.4%) 당시보다 커진 수치다. ‘가정 일에 관계없이 계속 취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탈북민도 상당수(64.8%)였다. 최대 장애 요인은 육아 부담이다. 탈북민 39.1%가 가장 큰 여성 취업의 걸림돌로 꼽았다. 2015년(35.2%)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탈북민이 늘기도 했다. 육아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된다면 탈북 여성 사회 참여 확대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북한 분위기의 영향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부부가 가사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탈북민 10명 중 7명(69.1%)이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동거 배우자가 있는 탈북민을 상대로 실제 가사 분담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부담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55.9%).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남성 탈북민 중 육아를 하고 있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탈북민들을 통해 나타나는 북한 사회의 성평등 의식은 충격적일 정도로 전근대적”이라고 전했다.

조사를 진행한 장인숙 선임연구원은 “여성 탈북민의 경우 부모님 등 가족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육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인 탓에 아예 직장생활을 포기하거나 급여 수준을 낮춰가며 육아와 병행 가능한 시간제ㆍ단기 일자리를 고르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했다. 열악한 육아 환경이 삶의 질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선임연구원은 “경제적 자립은 물론 원활한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해서도 육아 관련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나재단의 이번 ‘2017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는 지난해 6월 7일부터 8월 18일까지 2개월여 동안 재단 소속 전문상담사가 탈북민을 방문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만 15세 이상 탈북민 2,715명이 조사에 응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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