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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도이 다카코(9.20)

입력
2017.09.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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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장 걸출한 정치인 중 한 명인 도이 다카코가 2014년 오늘 별세했다.
일본의 가장 걸출한 정치인 중 한 명인 도이 다카코가 2014년 오늘 별세했다.

도이 다카코는 일본사회당(현 사민당) 첫 여성 당수, 첫 중의원 여성의장,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정치사상 여당 자민당의 집권을 저지한 첫 정치인으로 주로 소개되지만, ‘최초’ ‘여성’ 타이틀을 다 떼고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가장 걸출한 정치인 중 한 명이라 할 만하다. 그는 맹렬하게 평화헌법을 옹호했고, 성 평등 등 시민 인권과 환경 문제를 이슈화하며 일본 사회와 정치를 근대 민주주의 이념에 닿도록 이끌었다. 도이 다카코가 2014년 9월 20일 별세했다.

그는 1928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교토여자전문학교(현 교토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56년 도시샤대 법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학부 3년 때 평화헌법 강연을 듣고 헌법과 평화주의에 눈을 떴다지만, 앞서 10대 시절 의사 아버지를 도와 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평화의 가치를 절감했다고 한다. 50ㆍ60년대 사회주의자이자 헌법학자로서 대학서 강의하며 공해 관련 환경운동과 여성ㆍ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69년 사회당 요청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그 해 말 중의원(하원) 총선에 출마(효구 2구) 당선된 이래 12선(選)하며 사회당 간판 의원이 됐다.

8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정치 10년은 가히 ‘도이의 시대’였다. 그는 86년 사회당 당수가 됐고, 89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을 제1야당으로 도두 올렸다. 그 선거에서 사회당은 11명의 여성 의원(전체 여성 당선자는 22명)을 당선시켜 소위 ‘마돈나 선풍’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집권 55년 만년 여당을 누른 최초의 여소야대 의회에서 그는 참의원에서 총리로 지명됐지만, 당시 총리 가이후 도시키를 지명한 중의원에 밀려 총리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일본은 경제 거인일지 몰라도 인권에선 난쟁이일 뿐”이라고 거침없이 말했고, “나는 평화헌법과 결혼했다”며 독신으로 산 이유를 대곤 했다. 그는 보수주의ㆍ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흐름 속에 가장 도드라진 인권 정치인이었다.

그는 96년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며 온건 노선을 지향했지만, 일본의 우경화ㆍ보수화 흐름을 막아낼 순 없었다. 그리고 그에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그는 일련의 일본인 납북 사건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고, 훗날 “속았다”고 사죄하긴 했지만 북한 정권에 우호적이었다. 그는 2003년 중의원 선거에 패배했고, 2005년 비례대표 5번으로 입후보해 낙선한 뒤 사실상 은퇴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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