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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암살자라 불리는 풍자화… 루터 종교개혁의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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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암살자라 불리는 풍자화… 루터 종교개혁의 일등공신

입력
2015.03.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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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 지음

책세상ㆍ584쪽ㆍ3만원

신문을 뒷장부터 펼치는 이들이 있다. 만평의 팬들이다. 두근대는 표정으로 종이를 펼친다. 은밀한 미소와 통쾌함을 맛보고 나서야 앞장으로 돌아가 글을 읽는다. 한 컷 시사만화의 힘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만화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는 테러를 결심하게 할 만큼 위협적 존재였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미이행 등을 비방하는 전단지가 살포되자 경찰이 용의자수색을 위해 전국을 휘젓고 있다.

권력과의 싸움, 권력의 다섯 번째 가지로도 불리는 정치풍자와 풍자만화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는 16~19세기 유럽에서 싹터 황금기를 구가한 풍자만화, 만평, 풍자소설을 통해 유럽 근대국가의 형성기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지배층을 풍자하는 이미지는 기원전 이집트에서부터 발견되지만, 풍자화가 본격 활용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근대의 조짐이 시작되던 시기다. 그림과 만화는 문맹인 민중을 향한 효율적인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부상했다. 루터는 교회의 독단과 타락을 지적하는 풍자포스터를 통해 종교개혁의 계기를 마련했다.

루터는 팸플릿에 루카스 크라나흐의 풍자화 ‘면죄부에 서명하고 판매하는 적그리스도 교황’을 싣는 등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반대로 루터를 비난하는 작자미상의 풍자화 ‘루터를 백파이프로 연주하는 악마’도 등장했다. 가톨릭과 루터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는데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이 각 진영의 풍자화가 쏟아져 나왔다.

정치 풍자문화는 인쇄술의 발달과 맞물려 유럽 대중사회를 파고들었다. 특히 풍자만화는 1780~1820년 영국에서 정치적 황금기를 누린다. 가장 신랄한 풍자만화가로 꼽히는 제임스 길레이의 1792년 작품 ‘포식으로 힘겨운 남자’는 술과 음식으로 둘러 쌓인 안락의자에 옷이 터질듯한 비만상태로 앉아 숨만 겨우 쉬고 있는 조지4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프랑스 판화가 제이 제이 그랑빌의 1831년 작품 '검열의 부활'은 커다란 가위(검열)를 애지중지 껴안은 남자가 관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를 비웃는다. 왼쪽에서 졸고 있는 네 남자는 언론을 비꼰 것이다. 미술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예수의 부활'을 패러디 했다. 책세상 제공
프랑스 판화가 제이 제이 그랑빌의 1831년 작품 '검열의 부활'은 커다란 가위(검열)를 애지중지 껴안은 남자가 관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를 비웃는다. 왼쪽에서 졸고 있는 네 남자는 언론을 비꼰 것이다. 미술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예수의 부활'을 패러디 했다. 책세상 제공

왕권, 귀족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 풍자만화는 정치적 결정이나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리처드 뉴턴의 1798년 작품 ‘반역’은 총리 피트에게 잔소리를 들은 존 불(영국 상징 캐릭터)이 조지3세의 포스터에 방귀를 뿜는 모습을 통해 총리를 앞세운 왕의 전제정치를 비웃는다.

풍자의 영향력이 커지자 검열이 강화됐다.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왕을 조롱한 만화가, 인쇄공, 작가를 사형했다. 샤를 9세는 게임카드와 그림까지 검열하고 나섰고, 루이 14세는 모든 풍자만화를 정부 허가 하에 유통시키려 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풍자만화가이자 만화생산업자 샤를 필리퐁은 투옥당하고 벌금 부과를 당하면서도 계속 왕에 대한 비판적 평가 쏟아내며 검열에 항의했다. 이때 고용된 풍자만화가가 ‘풍자 만화의 아버지’ 오노레 도미에 등이다. 결론적으로 절대군주 왕정도 대중으로 번지는 풍자만화의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으며, 오히려 비판하는 새로운 빌미만 제공했다.

하지만 절대 왕권을 비꼬던 풍자만화도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 엘리트적 시각을 드러내며 근대의 변화를 불편해했다. 저자는 당대 사회풍자로 인기를 누린 잡지들에서도 여성을 “세상 흐름에 대해 판단력도 관심도 없는 존재”로 묘사하는 화풍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성을 사치의 표본, 정치적 부패의 원인으로 다루던 시선을 통해 강고했던 가부장적 인식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풍자의 목적을 “진실 혹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하려는” 것으로 보면서도 메시지를 과장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풍자작품이 “대중의 관심 사안을 대변하거나 판단을 촉구”하는 도구이자 “문화 주도자인 엘리트가 대중에게 팔기 위해 만든 생산품”이며 때로는 “설득, 선동하기 위해 또는 재미로”그려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풍자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왕족ㆍ귀족 권력의 몰락, 산업화ㆍ도시화와 빈곤문제, 국가 간 연대와 충돌 등 근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조망하는 역사적 설명이 풍부해 지적 포만감을 선사한다. 영국의 ‘펀치’, 프랑스의 ‘라 카리카튀르’, 독일의 ‘플리겐드 블라터’등에 당대 풍자잡지에 발표됐던 풍자화 등 약 250점의 이미지를 통해 “예술적 재능을 지닌 정치적 암살자”들의 솜씨도 확인할 수 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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