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우리사회 공룡들도 약자들에게 등을 내어줄 순 없을까

입력
2015.10.02 20:00
0 0
한 쌍의 아누로그타투스가 삼나무 숲, 강가, 들판을 헤맸지만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비룡소 제공
한 쌍의 아누로그타투스가 삼나무 숲, 강가, 들판을 헤맸지만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비룡소 제공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 / 장선환 글, 그림 / 비룡소 발행ㆍ36쪽ㆍ1만3,000원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 / 장선환 글, 그림 / 비룡소 발행ㆍ36쪽ㆍ1만3,000원

둘이 함께 지낼 보금자리를 구할 수 없어 결혼을 미룬다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적지 않다. 양가 부모의 도움이 신통찮은 처지에서 빠듯한 월급만으로는 전세도 월세도 족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아득한 공룡시대에도 사정은 다름 없었다고 하면 위로가 될는지. 회화를 전공하고 간간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해온 화가 장선환의 첫 창작 그림책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는 익룡 커플이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이다.

때는 중생대 쥐라기 후기, 참새만한 익룡 아누로그타투스 둘이 집 지을 곳을 찾아 떠돌다가 마음에 쏙 드는 자리를 발견한다. 숲에서 가장 큰 삼나무 우듬지! 전망 좋은 집을 지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조용한 숲을 뒤흔드는 소리에 이어 삼나무가 흔들린다.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삼나무 잎과 열매를, 둘이 애써 찾고 이룬 보금자리를, ‘자그작, 자그작’ 먹어치우는 참이다. 하릴없이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 보지만, 강가에는 지을 수 없다. 비가 오면 떠내려갈 테니까. 들판에도 지을 수 없다. 거대한 공룡들에게 밟힐 테니까. 절벽에도 지을 수 없다. 커다란 익룡 프테로닥틸루스들이 선점한 영역이니까.

달빛 쏟아지는 고사리 잎에 내려앉아 궁리를 거듭하던 아누로그타투스들은 기발한 결론을 내린다. 공룡들을 보아하니 그 덩치들 또한 날벌레들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듯한데, 자기들이 그 등에다 집 짓고 살면서 잡아먹어주면 서로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둘은 공룡들을 찾아다니며 묻기 시작한다.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 그러나 드리오사우르스는 자기의 예쁜 등을 내어줄 생각이 없고, 디플로도쿠스는 긴 꼬리를 휘두르며 무거운 건 질색이라며 엄살 피우고, 캄프토사우루스는 식탐에 빠져 대꾸할 새도 없다. 뜻밖에 엘라프로사우루스가 먼저 집을 지으라고 제안하는 바람에 기뻐하지만 자기들을 잡아먹으려는 속셈이라는 걸 알아채고 멀리 멀리 날아오른다.

총 길이 50㎝가 채 안 되는 무게 7g 이하의 작은 몸 둘을 누일 데가 없다니,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누로그타투스들이 우여곡절 끝에 브라키오사우르스―둘의 첫 보금자리 삼나무를 먹어치웠던 공룡―의 등에 집을 짓고 새끼도 낳아 길렀다는 해피엔딩은 마음 설레게 한다. 우리의 익룡들도 기성 경제 논리에 먹힌 채 혼인을 미루기만 할 게 아니라 애써 기발한 해법을 꿈꾸고 구하러 나선다면! 우리 사회의 공룡들 가운데 하나가 등을 내어준다면!

쥐라기 자연 속에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작가는 명암과 그림자에 의한 입체감 대신 공룡들과 곤충 식물들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이상희ㆍ시인(그림책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