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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동차라고요?”, 르노삼성 트위지의 해시태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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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동차라고요?”, 르노삼성 트위지의 해시태그 12

입력
2017.08.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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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 신기함의 극치를 달리는 자동차를 탔습니다. 스쿠터를 닮았지만 엄연히 바퀴 4개 달린 시티 커뮤터입니다. 누군가는 비웃었고 어떤 이는 환호했으며, 또 다른 이는 사고 싶다고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마치 내차 마냥 사흘 동안 ‘핫’한 르노삼성 트위지를 타며 뽑아낸 12개의 키워드, 만나보시죠.

#84km

실로 처음이다. 계기판에 뜬 최고시속을 시승기에 자랑스럽게 쓰다니. 84라는 숫자가 커다란 액정에 떡 하니 떠오를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액셀러레이터를 늦추자 모터 특유의 감속 소리가 들린다. 회생제동 중이라는 에너지 흐름은 보이지만 그리 효율적인 느낌은 없다. 가속할 때는 모터의 최대토크가 곧잘 느껴지며 통통 튀는 카트의 감각마저 품었다. 내비게이션 GPS와 비교해보니 속도 오차가 상당해 스스로의 부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 날랜(?) 가속력 체험은 한번으로 족하니라.

#반응

“내 터닝메카드보다 훨씬 멋있게 생겼어.” 뒷좌석에 올라탄 방년 7세 사내아이의 말이다. “뒤에 앉으면 어때? 안 답답해?”

“응. 근데 창문이 비닐이야. 뒤쪽에 구멍이 있어서 달리면 엄청 시원해. 기분이 좋아.” 뭔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아이가 탈착식 도어 프레임 사이로 손을 쓱 내민다. 위험해 보여 경음기를 눌렀다.

“되게 조그만데 빵빵 소리는 엄청 커. 멋있어.”

“…”

“빠앙!” 갑자기 요란한 경음기 소리가 들린다. 옆을 보니 야마하 엑스맥스를 타는 퀵서비스 기사 분이 엄지를 치켜 세우고는 한껏 웃었다. 이내 쏟아진 질문 세례… “충전료 600원에 잘 타면 80km를 달릴 수 있다”니 듣자마자 기절 직전이다. “특별한 사람 아니어도 신청 가능한지, 신청하면 언제 나오는지?” 다짜고짜 가격부터 물어보는 법인택시 기사 분도 있었다. 창문을 내린 채 나와 지근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는 뒤차가 경음기를 울려대도 좀체 출발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한편, 그랜저 TG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는 곱게 웃으며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만 연하게 틴팅된 창문은 올린 채로!

내게 말을 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 마냥 유쾌하게 퍼뜨리는 함박 웃음. 다들 트위지를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가득했다. 미소는 미소를 낳는 법, 덩달아 급작스레 기분이 좋아져 무척 고마웠다.

#고통

트위지는 전기차다. 매연은커녕 이산화탄소조차 내뿜지 않는 ‘청정’ 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 멈춰 있으면 고통스럽다. 1톤 트럭의 매연과 시내버스 후방의 열기가 그리 대단한지는 처음 알았다. 거의 고문 수준이다. 평소 모터사이클을 자주 타기에 더위에는 강하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그래서 유행한다는 핸디 선풍기를 마련했는데 실은 그게 아주 쓸모 있었다. 살짝 창피했지만 자체 전기라 자동차 배터리 소모도 없었다. 참, 배기가스는 없지만 액셀러레이터를 ‘쎄게’ 밟으면 모터 과열된 냄새 또한 강렬하게 퍼진다. 몸에 땀이 많거나 성격이 무척 급하다면 트위지의 오너가 되는 건 말리고 싶다.

#독백

“그래도 모터 달았다고 자그마한 차가 생각보다 잘 달리네. 스포츠 감각도 좋고.” 신기한 게 옆 차선 자동차 운전자들이 ‘깜빡이’를 굉장히 잘 켠다.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지들도 불안한가? 날 못보고 칠까봐?” 그리고 이건 체감인데, 확실히 경차를 몰 때보다 무작정 끼어드는 차가 훨씬 적다. 이거 상당히 ‘웃픈’ 기분이다. 차 너비가 너무 좁은 터라 나 스스로도 라이더의 버릇이 나올까 우려했는데, 스쿠터와는 운전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BMW C1이나 베넬리 아디바 같은 뚜껑 달린 스쿠터와 스타일만 비슷할 뿐 사륜자동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말은 곧 밀리는 도로에서 무조건 꼬리물기로 꾸물꾸물 가야만 한다는 얘기다. 너무 눈에 띄는 자동차니 나도 모르게 모범 운전하게 되더라. “이건 상대적 안전성인가?”

#나르시즘

아이들의 반응이 아주 열광적이다. 심지어 광화문 광장에서 날 향해 비명을 지르는 꼬마도 봤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우스꽝스러운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는 성격이 아닌 터라 유쾌할 리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횡단보도 멀리에서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한껏 웃는 여고생들의 시선은 고개 숙여 피했지만, 창문을 내리고 말을 거는 운전자들과 사진 촬영을 위해 멈춰 섰을 때 질문 폭탄을 던지는 예비 고객에게는 1일 영업사원의 마인드로 응대를 했다. 험악한 내가 방긋방긋 웃으며 과잉친절을 베풀 만큼 트위지는 독특한 상품이다. 이런 차가 많이 팔려 도로의 풍경을 깨끗하고 다채롭게 바꿔줬으면 좋겠다.

#쓸모

쓰임새는 아주 다양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침 10시면 전동 휠체어를 몰고 왕복 6차선 도로에 나타나는 분이 있다. 그는 조악한 수레 여려 대를 마치 기차처럼 엮어 동네 곳곳을 누비며 폐지를 수거한다. 법규 위반이 아닌지 따지기에 앞서 생업 앞에 무뎌지는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건 사실이다. 사진 속 전동 휠체어 대신 트위지라면 어떨까? 약간의 개조를 통해 장애인이나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위한 셔틀로 쓰면 무척 유용할 것 같다.

좁은 골목을 누비며 배달 상품을 나르기에도 좋고 캠퍼스나 공단처럼 넓은 부지 때문에 커뮤니티 셔틀이 필요한 곳에서의 카셰어링 모델로도 제격이다. 내가 3일 동안 출퇴근에 쓴 것처럼 비 오는 날 스쿠터 대용으로 가까운 시내를 오가기엔 이만한 차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르노삼성 부산공단에서 분명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에 트위지 한번 충전금액인 ‘600원’ 건다.

#서촌

한 때 ‘서촌에 살으리랏다’를 주구장창 외치던 내게 트위지를 받자마자 떠오른 곳은 바로 통인시장이었다. 기꺼이 한달음에 달려가 내가 사랑하는 골목시장을 누볐다. 예상대로 행인들의 열렬한 반응이 뒤따랐다. 미간을 찌푸린 사람은 없었고 다들 웃고 박수치고 즐거워했다. 구체적으로 살 수 있는지, 보조금은 얼마인지, 지금 살 수 있는지 질문이 범람한다. 기본적인 지식은 다들 상당했으니, 역시 차 한 대 세워둘 수 없는 골목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라 공통 관심사로 작용한 것 같다. 그게 트위지의 힘이고 발랄하고 쓸모 넘치는 시티 커뮤터의 매력이다.

#48km

5시간 가까이 충전했더니 주행가능거리 48km가 떴다. “헉. 이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은 말이다. “배터리를 가득 채운 뒤 실제 주행거리가 48km에 불과하다고? 메이커가 밝힌 수치는 80km를 넘는 것이었는데?” 충방전을 거듭했던 시승차의 배터리 효율성을 체크해봐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는 누적주행거리가 60km 거리를 넘어서자 배터리 잔량이 8%로 떨어져 재충전을 했으니 나름 선방한 셈. 정확한 주행거리는 실제 트위지 오너의 누적 데이터를 통해 알아봄이 정확할 것이다.

#스포츠

범프를 만나 차가 살짝 점프하니 박진감이 넘친다. 포장상태가 안 좋은 아스팔트에서 노면의 미세한 요철까지 느끼는 내 등뼈가 대견할 뿐이다. 서스펜션 오르내림이 거의 없고 앞뒤 좌우 흔들림이 많지 않아 안정감은 의외로 대단한 편. 차체 폭에 비해 좌우 폭은 무척 넓어서 모터사이클이 아닌 자동차, 그것도 고카트에 가깝다. 포뮬러원 스포츠 감각이 뭔지 아는 기술자들의 설계 흔적이 역력하다. 트위지는 타면 탈수록 묘한 매력이 넘쳐난다.

#섀시

여느 중국산 스쿠터 마냥 그냥 플라스틱 쪼가리 덧입힌 설계가 아니다. 가장 무거운 배터리를 차체 중심에 얹고 모터를 뒤쪽에 배치해 뒷바퀴를 굴린다. 배터리를 보호하고 승객의 충돌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이드 임팩트 프로텍트 바, 혹시 모를 전복에 대비한 루프 일체형 필러, 프레임과 서브 프레임의 유기적인 결합에서 전문가의 솜씨를 느낀다. 충격 흡수를 위한 공간이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 때문에 절대적인 안전성은 떨어지겠지만, 한정된 사이즈 안에서 뽑아낸 설계 방식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식재료를 구매하러 스쿠터를 타고 매일 재래시장에 들르는 친구(선술집 사장)에게 적극 추천했다.

#트러블

부암동 산꼭대기를 찾았을 때 안전을 위해 사이드 브레이크를 끝까지 당겨놨다. 불안해서 앞뒤 바퀴에 고임목 삼아 커다란 돌덩이를 받쳐놓기까지 했다. 문제는 볼일이 끝나고 주차 브레이크의 해제가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졌던 것. 아무리 브레이크 레버의 버튼을 눌러도 톱니바퀴 릴리즈 기능이 풀리지 않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레버와 고정 톱니가 맞물리는 부위를 인위적으로 밀어내 사이드 브레이크 기능을 해제시켜 버렸다. 뒤 브레이크의 리턴 스프링도 벗겨냈다. 불쑥 모터사이클을 자가 정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자전거와 흡사한 와이어 방식의 구성은 요즘 기술의 시각으로는 ‘싸구려’처럼 느껴질 것이다. 단순함을 좋아하는 내겐 반가운 구성이지만.

#편견

내 오해였다. 이 차가 쓸모 없는 독특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편견은. 트위지는 대형세단과 SUV만이 그럴 듯한 자동차라고 추앙 받는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근사한 시티 커뮤터다. 다양성이란 가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풍토 안에서 증명되는 법이니 성숙한 몇몇 시민들의 환호가 반갑기만 하다. 경차보다 훨씬 작은 트위지 앞에 불쑥 끼어드는 차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독특한 디자인의 힘일 것이다. 전기차에 주어지는 보조금 덕분에 서울 기준으로 500만원 대에 구매할 수 있는 현실은 한층 매력적이다. 트위지, 나부터도 무척 갖고 싶어졌다. 모든 차는 다 존재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사진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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