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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고양이 가면 벗어 놓고 사자 가면 벗어 놓고

입력
2016.01.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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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연희인 탈춤은 가면극이라고도 한다. 광대가 쓰는 탈-가면은 실제 사람의 얼굴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눈은 지나치게 크고 얼굴색은 아주 붉거나 검다. 관객은 금방 저거 탈 쓴 거다, 알게 된다. 그래서 광대는 마음 턱 놓고 춤과 노래와 익살을 걸판지게 벌이고, 관객도 패덕한 양반이나 세력가들을 마음껏 조롱하며 한데 어우러져서 마당판을 형성한다. 탈춤 고유의 미학이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가면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떼어내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악당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바꿔치기 했으니, 이 가면 아닌 가면을 쓰자 가면이 주인이 되어버린다. 애인이 장동건을 닮았는데, 갑자기 박명수나 정형돈 얼굴로 나타난다면 참 난감하지 않겠는가. 설사 정우성 얼굴로 나타났더라도 “이거…… 헐!” 하게 될 것이다.

‘고양이 가면 벗어 놓고 사자 가면 벗어 놓고’에는 광대의 탈도 없고 얼굴 바꿔치기도 없다. 지각 대장이고 싸움 대장인 한별이를 한별이네 반 아이가 시장에서 ‘슬쩍’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야채를 팔고 있는데, 한별이는 그 곁에서 열심히 양파를 깐다. 매우니까 소매로 눈을 쓱쓱 문질러가며.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한별이가 마치 옆에 ‘고양이 가면’ ‘사자 가면’을 벗어 놓은 듯하다. 왜냐? 걸핏하면 사자처럼 으르렁 욕을 해대고 고양이처럼 손톱으로 아이들을 할퀴던 한별인데 참 얌전하게 할머니를 돕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한별이가 교실에서 사나운 고양이나 사자로 표변했을 리는 없다. 그냥 성정이 퍽 활달한 것이든지 아니면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탓에 거칠어졌을 수도 있지만, 어디서고 항상 못되게만 구는 아이일 리야 있겠는가. 거친 모습에 가려진 아이의 착한 진면목을 아이 또는 어른의 시선으로 발견한 동시로, 여기서 가면은 양자를 대비한 표현 효과를 낼 따름이다. 그래서 지각 대장, 싸움 대장의 모습도 아이의 가면 아닌 ‘진면’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최근 대통령 총리 장관 대기업 사장들이 경제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에 줄줄이 나섰다. 이른바 ‘민생 구하기 입법’이라는데 서민과 노동자는 간데없다. 고양이 가면이라도 썼다면 확 벗겨버릴 텐데, 힘있는 자들의 뻔뻔한 민낯에 등골이 오싹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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