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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초식동물은 과연 풀만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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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초식동물은 과연 풀만 먹을까

입력
2017.03.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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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herbivore)은 꼭 풀만, 육식동물(canivore)은 꼭 고기만 먹을까? 내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다.

실제로 내가 산책할 때 데리고 다니는 개 ‘칸’은 열심히 풀을 뜯어 먹는가 하면, 초원에 사는 기린도 길에서 주운 큰 동물의 뼈를 입에 물고 잘 빨아먹는다. 또 하마는 자신들의 영토 주변에서 죽은 영양고기를 집단으로 뜯어 먹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 모두 직간접적으로 흙을 섭취한다.

초식동물은 풀만, 육식동물은 고기만 먹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종욱 제공
초식동물은 풀만, 육식동물은 고기만 먹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종욱 제공

옛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주술사들은 자연현상을 가벼이 보지 않았다. 고기만 먹을 것 같은 육식동물들이 특정한 장소를 찾아 가 땅바닥을 핥는 것을 보고 암염이라는 소금을 발견했고, 아플 때 찾아먹는 풀을 역시 같이 먹어보고 구충제나 항생제, 때론 마약 성분의 약효를 발견해 내기도 했다. 개중에 어떤 식물은 구토나 설사를 유발하는 것도 있었다. 무턱대고 먹었다가 처음엔 독초라 오해했지만, 나중에 동물들이 아플 때 배를 비우려고 일부러 먹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초봄에 칸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면 이 녀석은 꼭 길가에 핀 여리디 여리게 생긴 어린 풀잎만 골라 먹는다. 나도 도전해봤는데 꽤 먹을 만했다. 여름으로 접어들면 뒷산에 산딸기가 무르익는데 이 녀석은 열매가 익기 전부터 잎을 열심히 따 먹는다. 이 역시 함께 먹어보니 잎에서도 산딸기 특유의 냄새와 부드러운 맛이 있었다. 잎을 끓이면 은은한 빛깔과 향기를 풍기는 산딸기 차가 되는 것이다. 물론 빨간 열매가 익을 때면 나는 위에서, 칸은 아래에 떨어진 걸 정신 없이 먹어댄다. 산딸기는 맛이 시원하면서도 달짝지근하여 여름 최고의 자연식품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에 맞으면 대개 동물들 입에도 맞는 것 같다. 이것도 자연의 보편성 중에 하나라 해야 할까?

호랑이나 사자가 사는 육식동물 우리와 초식동물 우리의 풍경이 확실히 대조되는 건 바로 여름 무렵이다. 같은 땅바닥 방사장인데도 초식동물 쪽은 사막처럼 황토빛에 먼지만 풀풀 날리고 육식동물 쪽은 파란 풀빛으로 변한다.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도 이때쯤 되면 풀을 뜯어 먹는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아침에 청소할 때 보면 그들의 똥에 풀이 몽땅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도 심심풀이로 풀 뜯는 게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멘트바닥 사육장에도 풀이나 흙에서 얻을 수 있는 소금이나 미네랄 같은 것들을 보충해 넣어주면 동물들이 훨씬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사자나 호랑이는 풀을 주식으로 하진 않지만, 습관처럼 풀을 뜯곤 한다. 최종욱 제공
사자나 호랑이는 풀을 주식으로 하진 않지만, 습관처럼 풀을 뜯곤 한다. 최종욱 제공

초식동물의 경우도 우골분이나 육골분이 들어간 사료를 전혀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물론 광우병 파동 이후엔 그런 먹이 주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때 먹는 젖의 성분도 단백질 함량이 육식동물 쪽이 약간 높다는 것 외엔 거의 차이가 없다. 또 육ㆍ초식 동물 어미들 모두 분만 후에 나오는, 흡사 고깃덩어리라 할 수 있는 태반을 똑같이 먹어 치운다. 토끼나 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새끼를 몽땅 먹어버리기도 한다. 침팬지나 비비원숭이 역시 초식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가끔은 사냥을 하기도 한다. 반면에 육식만 즐길 것 같은 고릴라는 거의 초식동물에 가깝다고 한다. 새들은 보통 육식성과 초식성 조류로 나뉘는데, 환경에 따라 식습관이 완전히 변해버리기도 한다. 산비둘기는 거의 초식 위주로 생활하지만 도심 비둘기는 육ㆍ초식을 가리지 않는 우리 주변 오물 청소부다.

초식성의 침팬지나 비비원숭이는 가끔 사냥도 한다. 최종욱 제공
초식성의 침팬지나 비비원숭이는 가끔 사냥도 한다. 최종욱 제공

이런 걸 지켜보노라면 오랫동안 분류학에서 사용해 왔던 육ㆍ초식동물의 기준이 모호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생태계 상의 이들의 지위도 포식자와 피식자로 구분하지만, 피식자가 강하거나 수가 늘어나면 포식자들이 오히려 내쫓김을 당하는 형편이니 이 또한 용어가 적절치 않은 경우가 생긴다. 학문도 어느 정도 시대와 환경의 흐름을 따라가 줘야 한다. 특히 생물학에선 불변의 진리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야말로 흔들리며 성장하는 학문이 바로 생물학이다.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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