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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나의 이별은 당신의 연애보다 아름답다

입력
2017.11.22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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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도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의 변절, 분노의 질주, 자아의 붕괴, 추억의 습격, 내면의 복구…. 이 모든 힘겨운 과정을 통해 이별은 한 인간의 내적 성장에 막대하게 기여한다. 이별범죄가 횡행하는 흉포한 시대, 더더욱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별에도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의 변절, 분노의 질주, 자아의 붕괴, 추억의 습격, 내면의 복구…. 이 모든 힘겨운 과정을 통해 이별은 한 인간의 내적 성장에 막대하게 기여한다. 이별범죄가 횡행하는 흉포한 시대, 더더욱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름다운 이별’은 형용모순이다. 더럽고 추악하게 끝나야 끝나지는 게 연애다. 아름다우면 화해를 하지 왜 이별을 한단 말인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것이 이별일진대, 아름답기까지 하겠다니. 모든 이별은 일방적이며, 여기에는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사랑은 함께 하지만 이별은 혼자 겪는 것. 아름다운 이별이란 가해자의 합리화 서사일 뿐.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이 있다.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이별범죄가 횡행하는 흉포한 시대.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익혔듯 이별의 기술 또한 공부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제대로 사랑한 사람만이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법. 사랑의 감정은 고갈됐지만, 추억에는 경의를 표하려는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을 만났다. 생각하면 아련하고, 돌아보면 애틋한 옛사랑.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애잔한 마음 감추며 반갑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옛 연인, 당신에겐 있습니까?

사랑은 애착이고, 이별은 그 애착의 죽음이다. 모든 죽음은 애도의 노동을 요구한다. 이별에도 노동이 필요하다. 어느 아름다운 이별주의자 제공
사랑은 애착이고, 이별은 그 애착의 죽음이다. 모든 죽음은 애도의 노동을 요구한다. 이별에도 노동이 필요하다. 어느 아름다운 이별주의자 제공

추억의 장소 함께 걸으며, 이별데이트(A씨ㆍ24ㆍ여ㆍ대학원생)

“감정이 식었다고 느꼈을 때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고 2주 동안 숙려기간을 가졌어요. 평소처럼 연락도 하고 한두 번 만나기도 했죠. 제가 그 시간 동안 이별의 말을 골랐다면, 남자친구는 자기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이별 당일, 많은 대화를 나눴죠. 제가 상처받았던 점이나 그 동안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도 다 이야기했어요. 이별대화가 끝났을 때 그 사람이 신기하게도 이별데이트를 제안하더라고요. 처음 만났던 장소에 같이 갔어요.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추억의 장소들을 찾아갔죠. 겉보기엔 평소 데이트와 비슷했어요. 집에 갈 때도 평소와 똑같이 지하철역에서 포옹하고 ‘잘 가라’ 하며 헤어졌죠.

이별데이트를 하는 동안 사실 손 잡는 것도 굉장히 어색했고,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어요.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이별하고 나니 마음 속에 굉장히 잔잔한 느낌이 남더군요. 정말 새로웠죠. 과거의 이별이 나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작업이었다면, 이때의 이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 사람도 숙려기간 동안 본인 스스로 정리를 하고 왔던 것 같더라고요.

아름다운 이별에는 상대가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방이 내 연애에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연애에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어야 하는 거죠. 사람마다 이별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다를 수 있으므로 내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의하고 정리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해요.

제가 이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좋은 인상을 남기겠다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전에 연인과 시뻘건 얼굴로 크게 다투고 헤어진 적이 있는데 기분이 너무 엉망이었어요. 이후에 어떤 모임에서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이별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그 자리도 가시방석 같이 느껴지더군요. 우리가 함께 사랑한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그것마저 부정하며 망가뜨리고 싶진 않잖아요.”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은 이별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그들은 기꺼이 할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은 이별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그들은 기꺼이 할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천천히 이별했다(B씨ㆍ30ㆍ여ㆍ회사원)

“20대 초반 대학교 동아리 동기와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죽네 사네 연애를 했죠. 아마 그때가 순수했던 연애의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아주 천천히 이별했어요. 매일 학교에서 하루 종일, 방학 때도 빼놓지 않고 데이트를 했지만, 그는 고시 공부, 저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서로 소홀해졌죠. 현실적으로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어진 거예요. 사랑이 식었다거나 서로 안 맞는다거나 하는 매뉴얼적인 사유가 아니었어요.

한 달 간 이별 준비에 들어갔어요. 갑자기 안 만나면 적응이 안 될까 봐 서서히 만나는 빈도를 줄였죠. 잠정이별 상태라고 할까, 서로 생각 안 날 만큼 천천히 관계를 소강시키는 과정이었어요. 데이트는 평범했지만, 언젠가 이 준비과정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정리하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의외로 날이 갈수록 무뎌지더라고요.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 시점에 마지막 데이트를 했죠. 이걸로 끝이라는 걸 알았고, 우리 참 애썼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사회에 나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어요. 둘 다 다른 연인을 만났고, 저는 곧 결혼을 하죠. 동기 모임이 끈끈해서 가끔 그 친구를 만나는데, ‘한때 재미있게 지냈던 좋은 친구’로 편하게 얼굴을 봐요. 내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연인을 추억 속에서 추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참 좋고 뿌듯해요.”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모씨가 이별편지를 습작했던 노트. 본인 제공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모씨가 이별편지를 습작했던 노트. 본인 제공

세 번의 이별연습(C씨ㆍ33ㆍ여ㆍ영화감독 지망생)

“남자친구가 결혼 얘기를 꺼낸 게 이별의 계기였어요. 전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그는 당장 결혼이 급했어요. 그래서 세 번의 이별 연습을 했어요. ‘헤어지자’는 말을 세 번 하는 건데, 이렇게 하다 보면 막상 마지막 헤어지잔 말이 힘들지 않아요. 진짜 이별 연습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점점 아픔은 무뎌지고 이별은 확실해지니까요. 이별 연습 때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는 “그러면 좋겠어? 네가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두 번의 이별 연습이 다 그런 식이었어요. 세 번째는 진짜 이별이었는데, “헤어지자”고 말하니 그가 그러더군요. “알겠어, 너무 힘들면 연락해. 난 너 다 좋았어.”

그의 차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데 들려오는 엔진소리가 너무 슬펐어요. 눈물이 흘러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차 엔진소리가 계속 들리더군요. 30분쯤 후 차가 마침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다시 달려나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어요. ‘위대한 개츠비’처럼 ‘성공해 너에게 돌아가리’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이별은 이미 확실하죠. 그렇게 이별한 지 세 달. 지금 기타를 배우고 있어요. 언젠가 그에게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를 들려주고 싶어요.”

혼자만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다. 사랑을 함께 했듯, 이별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운 이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혼자만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다. 사랑을 함께 했듯, 이별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이별주의자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운 이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별 시나리오’보다 ‘이별 합의’(D씨ㆍ26ㆍ남ㆍ대학생)

“누구나 이별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비겁하게 통보하고 도망가는 시나리오도 있을 것이고, 상대방이 견디다 못해 먼저 이별을 선언하도록 유도하는 시나리오도 있겠죠. 제 경우엔 ‘마지막이니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잘해줘야겠다’는 게 주제였어요. 한 달 동안 여자친구에게 못해 준 것들을 차근차근 선물했어요. 그 친구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주거나 손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죠. 그 동안 우리 만남에 대한 느낌을 진심을 담아 편지에 적었어요. 그러면서도 애정표현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상대가 이 회고와 정산의 과정을 통해 이별을 눈치채길 바랬으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어요. 상대방은 제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침내 이별을 말하자 당혹스러워했어요. 이별에는 합의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거죠. 혼자만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었던 거예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다’, ‘취업을 해야 한다’, ‘군대를 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등 이별 사유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거였어요. 이별의 사유에 대해 쌍방이 납득을 할 수 있어야만 아름다운 이별이 가능한 거더라고요. 그 과정에 공을 들이느라 이별이 제 예상보다 길어졌죠.

좋은 이별에는 ‘멈춤(Pause)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것인데, 이것이 이별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은 절대 ‘헤어지자’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에요. 관계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는 것이 생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우선 공백을 두자는 거죠. 그 공백 기간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이때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행위를 해야 다시 연애를 이어가는 게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후회 없이 결정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이별에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이고,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이별데이트는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의례다. 이별데이트 장소를 다시 찾은 어느 아름다운 이별주의자. 본인 제공
이별데이트는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의례다. 이별데이트 장소를 다시 찾은 어느 아름다운 이별주의자. 본인 제공

좋았던 우리 사랑을 이제 함께 보낸다(E씨ㆍ28ㆍ여)

“두 살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귀었어요. 카페에서 그 사람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더군요. 실은 한 달 전부터 감지했던 일이라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그대로 일어서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남자친구가 잠깐 같이 걷자고 하더군요. 비 오는 광장에서 그 사람이 우산을 씌워줬어요.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서 예전에 자주 걸었던 거리를 함께 천천히 걸었죠.

그때 그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노래를 불러주는 거예요. 자장가를 불러주듯 따뜻한 목소리였어요. 그리고 손목에 걸고 있던 팔찌를 빼서 제 손목에 걸어주었죠. 비 내리는 거리, 하나의 우산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좋았던 시간을 보내는 마지막 작별의 의례를 치렀어요. 저는 그 이별의 의례 속에서 제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보다 분명히 깨달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지막 이별 장면은 더 자주 떠올라요. 지금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그때 우리의 사랑은 정말이지 아름다웠어요.”

사랑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속도로 달아오르거나 식지는 않는다는 데 근본적 비극이 있다. 하지만 공들여 이별의 의례를 거치는 것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예의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랑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속도로 달아오르거나 식지는 않는다는 데 근본적 비극이 있다. 하지만 공들여 이별의 의례를 거치는 것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예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사람도 노력했다. 노력해줘서 고맙다”(F씨ㆍ27ㆍ여ㆍ대학생)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문 앞에 편지와 영양제가 놓여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 남자친구(23)가 뭐 갖고 싶으냐고 묻길래 영양제라고 답했는데 그걸 이별선물로 준 거였어요. 자필 편지 두 장을 펼치는데 처음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기분이 싸했어요. 좋게 이별을 말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있긴 했어요. ‘너는 완벽하고 좋은 아인데, 내가 모자라서 그렇다, 잘 지내’ 식이었죠.

너무 당황스러워서 남자친구한테 바로 전화를 했어요. 그 즉시 울면서 10분간 뛰어서 그 사람 집 앞으로 갔죠. 큰 교회 벤치에 앉아 긴 시간 얘기를 나눴어요. 인터뷰 하듯이 차분하게 물어보았죠. ‘왜 헤어져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그 사람은 ‘네가 약학대학원을 준비하면서 학원에 들어가 있는 것이 연애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어요. 제가 ‘조금씩 서로 양보하며 만나자’고 했더니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그렇게 만나다 보면 마음이 권태로워졌을 때 내가 너한테 양보한 게 얼만 줄 아느냐면서 보상심리가 생길 텐데 나는 그게 너무 싫다. 사람이란 양보하고 맞춘 게 있으면 언젠가는 돌려받고자 생각하게 된다.’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헤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군요. 그 사람은 당장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저는 결혼은 최소 5년 후로 보고 있었어요. ‘이유가 그것뿐이야?’라며 끝까지 질문하니 그 사람 속에 있는 얘기까지 다 들을 수 있었죠. 그 사람의 상황과 마음이 이해되니 할 말이 없더군요. 결국 둘 다 질질 울면서 ‘행복해라’ 말하고 헤어졌어요. 감정의 온도차가 컸던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저를 위해 그렇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이별이란 추억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그 예의를 지키기 위해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한 거예요. 내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는 남지만, 아름다운 이별이었죠. ‘그때 그렇게 애써준 것, 고마웠어.’”

연인이 남겨준 이별선물과 편지. F씨는 종종 이 편지를 읽으며 추억에 잠긴다. F씨 제공
연인이 남겨준 이별선물과 편지. F씨는 종종 이 편지를 읽으며 추억에 잠긴다. F씨 제공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여성욱씨ㆍ32ㆍ남ㆍ작가)

“서로 굉장히 좋아했는데, 트러블을 많이 겪었어요. 하루는 데이트를 하다가 ‘우리 이렇게까지 노력했으면 여기까지 아닐까?’ 불쑥 말을 꺼냈죠. 그랬더니 여자친구도 ‘오빠가 봐도 그런 것 같지? 나도 그런 것 같아’라는 거예요. 그렇게 헤어졌어요. 친구들은 모두 ‘쿨병 걸렸다’, ‘네가 걔를 진심으로 안 좋아한 거다’라고 말했죠. 우리는 정말 좋아하고, 정말 노력했어요. 그걸 모르니 하는 말들이죠. 이런저런 트러블이 계속되고, 어느 정도가 되니 서로의 마음에 계속 상처를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한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동안 서로 솔직하게 생각을 말해왔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거죠. 헤어지자는 직접적인 말을 한 게 아니라 단지 제 의사표시를 한 거예요.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너도 진짜 많이 노력해준 것 같은데 우리가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다고 그 친구도 제 의견에 동의를 한 겁니다.

이별 자체가 아름답기는 힘들죠. 거의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별 자체는 아름답지 않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이 아름다운 거죠.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연인은 평소 대화를 잘 나누고 많이 나누는 연인이에요. 이별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창 좋을 땐 정말 대화를 많이 했어요’라고 하는데, 막상 그 대화 내용을 잘 살펴보면 많이 대화를 나눴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한다’, ‘너는 날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지,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하는 대화가 아니었어요. 불안감을 없애려 감정을 확인하는 대화만 거치다 보니 진정한 대화를 나눴다고 보기 힘든 거죠.

사랑을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고, 연인을 지상 유일의 존재로 낭만화할수록 사랑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 낭만적 신화의 실현이 좌절될 때, 이별은 무례하고 잔인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랑을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고, 연인을 지상 유일의 존재로 낭만화할수록 사랑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 낭만적 신화의 실현이 좌절될 때, 이별은 무례하고 잔인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따지거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대화를 몇 번 거치다 보면 서로가 자기검열을 하면서 어떤 가치관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게 되고, 그냥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말, 진짜 자기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별의 순간에 도달해요. 그런데 이때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까 이별을 당하는 쪽에서 왜 이별을 당하는지 모르고, 이별하는 쪽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연애에서 반복되죠.

사랑은 특별하지 않아요. 자기의 소유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써 자꾸만 사랑을 대단한 것으로 묘사하려고 하는데, 우정과 사랑은 큰 차이가 없어요. 결국은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죠. 사랑에 대한 강박,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해요. 대부분 ‘이 사람이라서 사랑한다’며 연인이 엄청 특별한 사람인 것을 강조하는데, 그렇게 초월적인 사람이면 그 사람만 사랑해야지 어떻게 연인이 바뀌나요? 연애로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하려고 하면 안 돼요.

사랑은 특별하지 않고, 이별도 아름답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내 연인을 존중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고, 헤어질 때까지도 그 존중의 마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게 아름다운 이별, 건강한 사랑 아닐까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김주은 인턴기자(고려대 컴퓨터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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