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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화에서 아줌마의 향기가 느껴진다”

입력
2015.06.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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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파전을 억수로 얇게 굽었네예.” “부침가루를 적게 넣고 야채와 해물을 마이 넣었심더. 어때요, 맛있지예?”

요리강좌 문하생 노릇 한 달도 되지 않던 시절, 난 달라진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요리가 상 위에 올라오면 머리 속에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떠오르고, 안전장치 풀린 기관총처럼 질문이 쏟아지는 것이다. ‘파마간참후깨설’로 간을 맞춰본 음식이 두 자리 수를 넘어서지만 이렇다 할 맛을 내지 못해 항상 끙끙대던 터라 식당 밥상에 올라온 반찬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아지매, 이 김치찌개는 우예 맛을 냈어요?” “야, 식당에서 니한테 골 빘다고 비법을 갈케주나. 치아라.” 겸상하던 친구가 아예 손사래를 친다. 식당 아주머니는 웃고 말지만 호기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김치찌개, 된장찌개처럼 아침 저녁으로 먹는 음식은 한식조리사 과정 51가지 요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격증 시험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테스트는 없다는 얘기다. 온 국민의 음식이라서 굳이 시험이 필요없다는 건지, 시험 따위로 정형화하지 않겠다는 건지 알 순 없지만 나는 또 해결사인 요리강사에게 달려간다. “설탕 반 스푼만 넣어보세요. 김치의 신 맛을 잡아줄 테니.”

요리에 입문하기 전 식당에 가면 옆자리 앉은 아줌마들의 행태 중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상 위에 밑반찬이 오르면 무슨 신약 성분 조사하듯 젓가락으로 헤집어 놓는다. 그리곤 “이 버섯 볶을 때 참기름을 많이 썼네.” “콩나물에 간이 아주 잘 뱄어.” 주문한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부터 아예 해부를 한다. 그런데 내가 그 대열에 설 줄이야….

그 덕분인지 요즘 아줌마들과 새롭게 말문이 트였다. 요리 얘기로 시작하면 한 시간이 짧다. 섭산적을 만들 때 석쇠를 식용유로 손질한다거나, 완자에는 밀가루를 묻혀 달걀 노른자를 입혀야 한다거나, 무생채는 고운 고춧가루로 물들여야 한다고 떠드는 고향 남자가 대구 아줌마 눈에는 신기한가 보다.

음식을 앞에 놓고 아줌마들과 마주 앉으니 마음이 편하다. 상 위에 올라온 음식 품평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음식을 앞에 놓고 아줌마들과 마주 앉으니 마음이 편하다. 상 위에 올라온 음식 품평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에게 가장 서툰 것이 대화라는 것은 팔도 사람들이 다 안다. 남성들이 유독 심하다. 어려서부터 익힌 화법은 주로 주장이나 통보, 선언 등 일방통행식이었다. 화법은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옛날 ‘사상계’라는 잡지에서 대구 사람의 성격을 철학적으로 분석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철학자의 눈에 대구사람은 ‘주관적 관념론자’라는 것이다. 사전처럼 얘기하면 ‘일체의 사물은 모두 개인의 주관적 의식작용 안에서만 존재하고, 주체의 인식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간단히 말하면 ‘내 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 중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이 유독 많다.

대구 토박이인 나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대구에 살면서 내 또래 여성들과 대화란 것을 제대로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대학 들어와서야 제대로 남녀 어울려 사는 사회에 발을 들였지만, 여학생과의 대화는 종종 길을 잃곤 했다.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고도 마찬가지였다. 취재를 위한 질문과 응답, 그게 다였다. 여성과의 대화는 나에게 쉬운 영역이 아니었다. 두 딸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여성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군대’와 ‘축구’에 대한 남성들의 대화를 여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리를 갓 시작했을 때 경남 창원의 친구 집에서 부부모임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싱싱한 회가 반기고 있었다. 회 한 점에다 소주 한 잔 털어 넣을 무렵 안주인이 그제서야 저녁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도다리쑥국에 구절판 등 무려 여섯 가지 음식을 1시간 안에 차려놓는 것을 보고 난 입이 쩍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터지만 이날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비결이 뭔데요. 누구는 한 시간에 두 가지 요리도 차려내지 못하는구만.” “많이 하다 보면 머릿속에 자동으로 요리 순서가 떠올라요. 한 시간이면 거뜬하죠.”

결국 많이 해보라는 얘기다. 중국 송나라 구양수 선생도 글쓰기의 3요소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꼽았다. 요리에 적용해보면 요리에 관한 책과 레시피, 동영상을 많이 보고 실제로 만들어보며, 생각도 많이 해보라는 것이다. 왕도가 따로 없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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