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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외계인이 한국-브라질 전을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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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외계인이 한국-브라질 전을 봤다면

입력
2015.10.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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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ESPN에 럭비월드컵에서 활약한 일본 대표팀에 대한 기사를 썼다. 한국에서는 럭비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나는 럭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한번은 성남의 옛 모란 운동장에서 열린 한국-UAE전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국 럭비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괜찮았다. 아시아 2인자로 보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일본에서도 럭비는 인기 종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은 2015 잉글랜드 럭비 월드컵에서 세계 최고 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남아공을 제압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이 승리는 럭비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연한 승리가 아니라 일본이 이길만한 자격이 있는 플레이를 했다는 점이다. 더 공격적으로 나선 팀도 일본이었다. 일본은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할 기회도 있었는데, 비기는 것을 택하는 대신 승리를 위해 더 싸우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경기 막판에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아시아 팀들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시아 팀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축구 강국을 만나면 주눅이 드는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한국시간으로 지난 일요일(18일) 아침 칠레에서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 첫 경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결과가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브라질’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였다. 이름만으로도 강한 위용을 뽐내는 브라질이다. 우리는 브라질의 초록색 국기와 노란 유니폼만 봐도 환상적인 축구를 상상한다.

하지만 축구를 하나도 모르는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본 경기가 칠레에서 (칠레가 남미 국가임을 기억하자) 열린 한국-브라질전이라면 ‘브라질이라는 팀이 왜 특별해?’라고 반문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한국은 브라질과 대등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더 나은 기술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거기에 스피드와 투지까지 갖추었으니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탁월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은 상당한 볼 소유권을 누리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조직력은 인상적이었고 냉철한 플레이는 소년들의 축구로 보이지 않았다. 성숙한 몸동작과 전술의 조합이었다. 조직적인 플레이만 놓고 보면 성인 대표팀보다 나은 장면도 때때로 나타났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차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자신의 축구가 특별하다는 인식과 함께 자라나지만, 요즘에는 그러한 것도 사라지는 중이다. 브라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축구를 잘해야 하는 까닭이 있을까? 축구 실력과 창조력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린 태극 전사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이게 가장 멋진 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상대가 강팀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도 브라질만큼 할 수 있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해도 이는 너무나 큰 발전이고 차이점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이승우는 한국 축구의 엄청난 무기다. 그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거만하다’ ‘건방지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그러한 모습은 브라질의 잘 하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나가 보이는 특징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은 상대를 위축되게 하는 브라질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승우의 명성 자체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크다. 자신감에 넘치는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가 공격 진영을 휘젓고 다니면 상대 선수들은 그에게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까닭에 김진야의 돌파도 나올 수 있었다 (이승우가 교체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치자. 그 정도의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하면 이는 아주 작은 대가에 불과하다)

사실 한국 선수들의 기술력은 계속 존재해온 것이었으나 이제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까지 갖춰졌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브라질을 잡을 수 있었다. 0-0으로 진행되던 후반, 한국이 수비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고 해도 이를 비난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1점을 노리기보다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골을 노렸다.

이번 승리에 너무 도취되거나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이제 막 개막전을 치른 어린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다음 경기를 차분하게 준비해 기니를 꺾지 못하면 브라질을 잡은 것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도 벌써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 축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말들이다.

U-17 대표팀의 승리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알려주는 막 뜨기 시작한 태양과도 같다. 이들은 브라질을 단순히 이긴 게 아니라 승리할 자격이 있는 플레이를 했다. 한 골을 넣고 무조건 틀어막은 승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결과와 함께 축구 팬들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술로 브라질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축구, 이러한 모습을 보았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축구칼럼니스트

번역=조건호/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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