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진
논설실장

등록 : 2018.05.09 19:00

[황상진 칼럼] 출발선에 서는 북한 비핵화

등록 : 2018.05.09 19:00

북미회담 개최 9부 능선 넘은 양 정상

북한 비핵화 절차 시작돼도 암초 많아

냉정한 인내심으로 종착점에 도달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9일 오전 일본 도쿄 영빈관 '카초노마'에서 제7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언론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북미정상회담 성사부터 남북정상회담 개최까지는 극적 순간의 연속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북미회담 수용,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담, 북미 정상의 파격 언행은 기존 외교 관행과 경험에 바탕한 예측을 무력화했다. 파격은 ‘상상을 뛰어넘은’ 결정과 내용이라는 수식과 함께 설렘과 흥분을 낳았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희구가 높아지고 응집했다. 그러나 작금의 긴박한 북미, 북중 움직임은 흥분과 기대가 딱 거기까지여야 함을 일깨운다.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 관련국들의 보폭은 이전보다 확연히 넓어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은 기싸움인지 수싸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접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중국, 일본의 태도를 보다 한반도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북미정상회담 전 미국과의 마지막 조율을 준비 중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주(株主) 지위를 회복했고, 일본은 미국을 설득해 북한을 향해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를 언급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판문점 선언 탄생까지가 상상력을 뛰어넘은 상황이라면, 최근 관련국들 움직임은 치밀한 현실 외교전의 전형이다. 물론 변형과 파격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기존 방식을 벗어난 일탈적 외교전을 벌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각국이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각축하는 시기라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핵 포기 대가로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개발을, 미국은 ‘완전함’을 넘어 ‘영구적’으로 돌이킬수 없는 비핵화를, 중국은 미국 견제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일본은 핵 위협으로부터의 안전보장과 장기적으로는 북한 경제개발 참여를 노린다. 때문에 북한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관련국들이 추구하는 노선의 방향과 내용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한반도 평화 실현의 수준과 실현 과정의 방법론 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경우에 따라 미묘한 온도차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 향후 남북미, 남북미중 회담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해야 한다. 남북미 사이에서 끊임없이 견제구를 날리며 존재감과 영향력, 이익 도모를 꾀하는 중국과 일본의 역할 확대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 같은 복잡다단한 정세 아래서 북한 비핵화가 조만간 출발선에 서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정상회담을 향한 9부 능선을 넘었다. 지금 하산하면 오르지 않은 것보다 못한 상황이다. 두 정상 모두 세계에 내놓을 결과물을 위해 막바지 샅바싸움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정상회담은 성과가 담보된 행사이고, 실패를 전제로 하는 정상회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이런 공식을 따를지는 미지수다. 의제 조율 과정에서 두 정상이 해결해야 할 부분을 남긴다면 통 큰 합의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회담의 판이 깨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큰 틀의 합의가 이뤄져도 완전 비핵화에 이르는 과정은 해도(海圖) 없이 나선 항해처럼 번번이 보이지 않는 암초와 느닷없는 폭풍을 대비해야 하는 여정이다. 그때마다 해법과 대책을 놓고 남북, 한미, 북미, 한미-북중, 남북미중 등 다양한 채널과 구도 별로 충돌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목적지는 있으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회의(懷疑)가 반복될 지루한 여정은 우리에게 냉정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문 대통령의 북미 중재를 위한 ‘로키’ 전략은 그런 상황적 요구에 대한 호응일 것이다. 한반도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역사의 유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 세계사적 협상에 과도한 기대나 지나친 비관은 경계할 일이다. 다만 북한 비핵화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