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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선배가 밥벌이 한다는데..." 퇴직공무원에 가짜 증명서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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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선배가 밥벌이 한다는데..." 퇴직공무원에 가짜 증명서 남발

입력
2017.02.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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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때 상하수도 경력 없어도

“관련 용역 감독 20여건” 조작

지자체 기술직 관행 전국 만연

기술직 퇴직공무원들이 전 근무처에서 발급받은 실적증명서. /2017-02-17(한국일보)
기술직 퇴직공무원들이 전 근무처에서 발급받은 실적증명서. /2017-02-17(한국일보)

전북지역 자치단체들이 퇴직한 기술직 공무원들에게 재직시절 각종 기술설계용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짜 실적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지자체 중 상당수는 민간업체에 재취업한 전관들의 ‘용역 수주용’ 청탁을 받고 허위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부실업체 선정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전북 전주시청에서 퇴직한 뒤 민간설계업체에 참여기술자로 취업한 A(61)씨는 같은 해 7월 한 자치단체에서 하수도 기술설계용역을 발주하자 전주시로부터 자신이 재직 기간 기술용역을 감독했던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용역입찰의 사업수행능력평가(PQ) 때 반영하는 참여기술자의 경력ㆍ실적 자료는 업체의 입찰 참여 여부를 가리는 주요 평가 항목 중 하나다.

A씨가 제출한 자신의 경력증명서엔 2006~2014년까지 20여건의 상하수도 관련 기술용역 실적이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A씨는 공직 시절 상하수도 분야에 근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증명서 발급 부서가 상하수도 담당 부서가 아닌 의회사무국이었다. A씨의 경력증명서가 조작된 것이다. 그런데도 발주청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PQ를 진행했다.

전북도 기술직 공무원 출신인 B(59)씨도 지난해 퇴직하자마자 지역의 한 민간설계업체에 취업한 뒤 기술용역 입찰 참여를 위해 전북도에서 실적증명서를 뗐다. B씨의 기술 실적에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주, 익산, 정읍, 완주 등 도내 시ㆍ군 상하수도설계 감독 경력 10여건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B씨 역시 해당 지자체 근무경력이 없다. B씨의 실적증명서도 해당 시ㆍ군이 아닌 전북도 재난안전과에서 발급해줬다. 전북도 본청 출신이 일선 시ㆍ군의 발주 사업 실적까지 가로채 실적을 부풀린 것이다.

전직 기술직 공무원들의 ‘가짜 경력 만들기’는 기술직 전ㆍ현직 공무원 사이에 퍼져 있다. 전관예우 관행과 주먹구구식 경력증명서 발급 체계 등이 맞물려 있으며 이는 전북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관행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관계자는 “기술직 공무원 출신 참여기술자의 실적 부풀리기는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기술직 선배들이 퇴직 후 밥벌이하겠다는데 후배 입장에서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업체들의 과도한 입찰 경쟁도 원인으로 꼽힌다. 전주시 한 설계업체 관계자는 “PQ대상 기술용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실적 조건을 채우면서도 낮은 중첩기준도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영세업체에선 경력이 많은 기술직 공무원을 경쟁적으로 영입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시행되는 참여기술자 평가 기준을 등급과 경력은 인정하되 실적은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는 등의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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