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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24시] 中 세대갈등 불 붙이는 ‘광장무’

입력
2017.11.19 18: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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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ㆍ노년층 여성들이 한겨울에도 광장무를 추는 모습. 바이두
중국의 장ㆍ노년층 여성들이 한겨울에도 광장무를 추는 모습. 바이두

중국에선 어디를 가나 광장이나 공원 등지에서 수십명의 장ㆍ노년 여성들이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남성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여겨지고 있는 광장무(廣場舞)다. 지난해 중국 국가체육총국의 자료에 따르면 광장무를 즐기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억2,000만명을 넘는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광장무 규제에 나섰다. 명분은 소음에 따른 민원ㆍ분쟁 해결과 교통질서 유지다. 수십명이 스피커를 틀어놓고 춤을 추다 보니 인근 학교 수업이 방해를 받거나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잦을 수밖에 없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엔 일부 도로를 점거하는 경우도 있고, 이를 제지하는 젊은 경찰들이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따라 국가체육총국은 엄숙한 분위기를 요하는 열사릉 주변 등지에선 광장무를 엄격히 금지했고, 일반 지역에서도 학교 수업이나 주민 생활이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소음만 허용키로 했다. 도로 점거나 유료회원 모집, 녹지 훼손, 공권력 무력화 등에 대해선 형사처벌의 길도 열어뒀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광장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광장무가 자칫 세대 갈등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웨이보(微薄)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투영된 광장무는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운 집단주의의 잔재에 불과하다. 광장무를 추는 동영상을 편집해 올린 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특히 최근 들어 비좁은 대도시의 공원이나 광장 등지에서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와 광장무를 추려는 장ㆍ노년층 사이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젊은 층의 반발심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광장무의 열기가 쉽게 식을 것 같지도 않다. 1949년 신중국 건설 후 공산당이 민중문화 전파와 건강단련의 일환으로 광장무를 권장했고, 1990년대부터는 각 지방정부가 문화광장을 조성하면서 장ㆍ노년층의 광장무 열풍이 본격화했다. 사실상 당과 정부가 사회통합을 명분 삼아 광장무를 권장해왔던 셈이다. 체육총국이 광장무 규제책과 동시에 광장무를 출 수 있는 장소의 적극적인 발굴과 주민들의 자율적 관리 방안 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광장무와 관련된 옷ㆍ신발ㆍ스피커 등 관련 물품의 시장규모가 이미 수천억 원대에 이른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장ㆍ노년층에게 광장무는 건강을 챙기는 수단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가생활이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젊은 세대의 눈엔 구시대의 잔재이자 노인들의 시끄러운 오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광장무는 이미 중국 사회 내 세대 갈등의 뇌관이 되어가고 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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