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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세월호와 악마의 증명

입력
2017.04.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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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세월호 육상 거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세월호 육상 거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악마의 증명(Devil’s Proof)’이라는 말이 화제다. 중세 유럽에서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법률 용어로, 요약하자면 어떤 일의 인과관계가 자신과 관련 있음을 증명하기란 쉽지만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일본 내 우익 성향 인사가 운영하는 모리토모(森友)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배경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부인 아키에(昭恵) 여사가 깊숙이 관여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이런 차에 이들 부부가 이 학원에 기부금까지 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베 총리는 “기부금을 건네지 않았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며 “말하자면 악마의 증명”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기부금을 내지 않았음을 에둘러 표현한 아베 총리의 이 말은 온갖 패러디를 남발하며 사람들의 안주거리로 전락했고, 일본 드라마에까지 차용될 정도의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따지고 보면 불확실성이 강한 현대 사회에서 악마의 증명이 요구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수없이 쏟아지는 상당수 가짜 뉴스의 경우 그것이 가짜임을 밝혀내는 팩트파인딩 과정이 녹록하지 않아 악마의 증명으로 남을 위험성이 크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마저 내재해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대표적일 게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할 것이라는 가짜 뉴스는 역으로 “미국은 절대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명백한 오보로 치부하기 쉽지 않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세월호 참사가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악마의 증명을 요하는 온갖 의혹들이 가장 많이 쏟아지고 있고, 안타깝게도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 갈등의 중심에서 배회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직후 선원들과 국정원이 통화했다는 이유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됐고, 제주 해군기지로 운반하려던 과적 철재 논란, 세월호 사고 당시 잠수함 충돌설 등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기 어려운 너무 많은 의혹들에 둘러싸여 있다.

구조 초기 잠수 장비 선택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이 제기한 의혹 역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악마의 증명의 연장선에 있다.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을 두고 정부는 영화제 예산을 깎았고, 관련자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렀다. 표현의 자유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부와의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배척한 당사자들은 결국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 구조를 변경한 업자, 과적을 눈감아 준 공무원, 무리한 항해를 감행하고 허용한 관련자, 구조에 소홀한 해경 등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부조리를 관행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이유로 눈감아 온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총체적 비극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월호를 둘러싼 악마의 증명은 어쩌면 과거 부조리와 단절하고픈 우리 사회의 조그만 몸부림일 지 모른다.

16일 참사 3주기를 전후해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인양돼 미수습자 수색 및 사고원인 규명을 둘러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수습자 9명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한가지가 더 있다. 완전체로 인양한 세월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세월호 주위를 맴돌고 있는 각종 의혹들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어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웠던 의혹들의 진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너무도 부끄러운 부(負)의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미래에는 더 이상 세월호와 관련된 악마의 증명을 논할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에 일어난 비극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참회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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