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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우린 모두 ‘이미’ 장애인이다

입력
2017.09.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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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단체 회원들이 5일 서울지하철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5년간의 농성을 마무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배우한 기자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5일 서울지하철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5년간의 농성을 마무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배우한 기자

#2002년 3월 28일 아침 나는 울었다. 무던 참으려 애썼다. 늦었다고 경적을 울리는 출근 차량, 보내달라 울부짖는 장례 행렬, 막아선 경찰이 뒤섞인 서울시청 부근 도로 한복판에서 취재를 잠시 잊었다. 눈물을 잠글 수 없었다.

‘아이가 없다면 이렇게 힘든 세상, 더는 버틸 힘이 없다’더니 그는 아홉 살 아들이 없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전 남편으로부터 아이를 데려오려니 통장 잔고가 필요했고, 700만원을 꿨더니 월 20만원 남짓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기는 진퇴양난을 겨울 삭풍 천막농성으로 버텼다. 소아마비장애인이 부럽다던 서른다섯 1급 뇌성마비장애인 최옥란씨는 양육권과 생존권 중 하나만 고르라는 세상의 강요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 마지막 길마저 모순투성이였다. “아들과 함께 살려면 최저생계비는 포기해야 한다니,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란 말입니까.” 고인의 생전 절규는 더 들을 수 없었다. 건너편 전광판에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4년4개월 만에 A등급으로 상향 조정’이 점멸했다.

#‘우리는 왜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중략) 건너갈 수 없는 횡단보도, 들어갈 수 없는 식당과 화장실, 우리가 살 땅은 어디입니까.’

바로 지금 이 땅 장애인의 넋두리라 간주했다면 맞고 또 틀렸다. 올해 ‘장애인의 날’에 봤을 법하지만(그래서 맞고), 소아마비 휠체어장애인 김순석씨가 서른다섯 삶을 마감하며 1984년 9월 이맘때 지하셋방에 남긴 유서다(그래서 틀렸다). 유족은 아내와 5세 아들.

30년이 지나도, 15년이 지나도 “부디 잘못된 세상을 바꿔주시기 바랍니다”(김순석) “후배들만 잘 살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최옥란)던 고인들 꿈은 꿈일 뿐이다. 세상은 여전히 ‘가만 있으라’ 보이지 않는 창살 안에 그들을 가둔다. 장애인 기사만 쓴다고 한때 ‘앵벌이’ 기자라 불리던 나도 무뎌졌다. 후배들이 관련 아이템을 내도 심드렁하다.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무릎 꿇은 엄마들을 보고도 안쓰럽지 않았다. 굳이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행여 세상 기준으로 아이가 성공하더라도 내가 아는 장애인 엄마들은 늘 죄인이라 고백했기에. “집값 떨어진다”는 삿대질도 익숙했다. 되레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낯설었다. 그래서 ‘이번엔 지을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우리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장애인 옹호 논리는 비겁하다. 아직은 아니라는 배제 원칙이 작동한다. 소속감이라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낸다. 우리 현실은 축소되고 삶은 협소해진다.

나는 언어장애가 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고 발음이 샌다. 입사 최종 면접에서 족족 떨어지며 좌절했다. 입사 뒤엔 “천천히 말하라” 얘기에 주눅 들었고 또박또박 말하려 분투했다. 동료들 배려 덕에 이겨냈다. 이젠 말을 앞세우지 말고 남을 경청하라는 선물로 여긴다.

따지면 보이지 않는 장애는 흔하다. 후배들에게 한껏 화풀이하거나 작은 일에 해코지하는 분노조절장애,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결정장애,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공감능력장애처럼 누구나 저마다 장애를 품고 산다. 눈을 떴으나 하나도 보지 못하고, 귀가 열렸으나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며, 사지가 멀쩡하나 행동하지 않는다. 보이는 장애는 생활에 불편을 안기지만 보이지 않는 장애는 삶에 불행을 심는다. 어떤가, 당신은 장애인이 아닌가?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회가 있다. 전시(展示)라는 꼬리표가 무색하게 아무 것도 안 보인다. 그곳에선 시각장애인이 우리 갈 길을 인도한다. 상황이 바뀌면 역할도 바뀐다. 2017년 9월 5일 장애인단체가 새 정부 약속을 믿고 1,842일만에 광화문 농성을 풀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 장애인등급제/부양의무제도 및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함께 지켜보자. 잊고 살지만, 우린 모두 장애인이다.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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