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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떤 서점의 변신

입력
2016.02.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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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매장 여기저기에 여러 명이 동시에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독서테이블을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8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대형 책상도 2개나 놓았단다. 책에 대한 독자의 거리감을 없애고 서점을 일종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 했다.

평소 자주 방문하지는 못해도 ‘광화문 교보’는 나에게 늘 마음속의 랜드마크 같은 의미로 남아 있다. 유년의 어느 날, 그곳에 처음 가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작은 동네서점만이 아닌, 대형서점이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사방을 빽빽하게 채운 책들과 책들과 책들 속에서 열 세 살의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옆에 계신 어머니가 놀라며 왜 그러냐고 물으셨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주 막연히, 언젠가는 여기에 내가 쓴 책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것도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종종 혼자 그곳에 갔다. 일 없이 시내를 배회하다가도 마지막엔 꼭 광화문에 들르게 되었다. 서점이 거기 없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특별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새로 나온 책들이 무엇이 있는지 슬슬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제목의 신간이 있으면 한 권 집어 들고서는 매장 구석 아무 곳에나 처박혀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뒷부분을 계속 읽고 싶어지면 계산을 하고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곤 그곳을 나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점에서 할 만한 일이 달리 또 무엇이 있겠는가.

문학에 관심을 두면서부터는 문예지 최신호를 읽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이 빠진 것처럼 문예지들이 드문드문 입고되어있는 다른 대형서점의 잡지 코너와는 달리 그곳에는 웬만한 문예지들이 한 두 권씩은 꼭 있었다. 아마도 출판사 관계자들에게도 ‘랜드마크’로 인식되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2년 종로서적이 폐점했을 때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던 선배들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그 서점, 그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애 첫 책이 나왔을 때 책이 잘 놓여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틀 연속 광화문에 출근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시대에 그곳이 여전히 든든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연간 이용객 수가 1,000만명이라는데 그 많은 이들이 오가는 서점 한복판의 독서테이블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지 궁금했다. 이런 저런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독자들이 책을 사는 대신 앉아서 읽기만 할 거라는 걱정, 그렇게 손을 타서 훼손되는 책 때문에 출판사가 부담스러워질지 모른다는 염려 등등이 모두 기우이기를 바랐다.

얼마 전 벼르다가 드디어 그곳에 가 보았다. 하필 서점 이용객이 많은 겨울방학의 주말이어서 일까, 5만년 된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독서 테이블은 빈자리가 전혀 없이 빼곡했다. 여행서와 재테크서를 펼치고 실용정보를 습득하는 분들, 본인의 책인지 서점의 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종 수험서를 펼치고서 ‘열공’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다. 아예 책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아동도서 코너로 발길을 돌려보았다. 그곳에 마련된 독서테이블 역시 만석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들이 반, 휴식의자 대용으로 사용하시는 듯한 어른들이 반이었다. 널따란 책상이 한없이 좁아 보였던 건 이전에 앉았던 이들이 치우고 가지 않은 책들이 높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들은 너무 함부로 놓여 있어서 책이 아니라 마치 어서 말끔히 치워야 할 쓰레기 산처럼 보였다. 이 대형 서점의 실험이 성공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를 것이다. 그러나 거리감이 없다는 말과 막 대해도 좋다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오후였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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