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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넘은 고사리 우정 "친구야, 답장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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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넘은 고사리 우정 "친구야, 답장 기다릴게"

입력
2014.10.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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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또래들끼리...연필로 꾹꾹 눌러쓴 엽서 주고받아

다음 손편지는 부산↔광주 초등학교..."느리지만 깊은 정, 영호남 소통 물꼬"

대구 동일초 3학년 1반 학생들이 22일 전남 순천 왕지초 친구들에게 쓴 답장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환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대구 동일초 3학년 1반 학생들이 22일 전남 순천 왕지초 친구들에게 쓴 답장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환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아직은 너를 잘 모르지만 곧 답장이 오고 우리는 서로를 잘 알게 되겠지? 그런데 너 남자니, 여자니?”

22일 오전 9시 대구 동일초 3학년 1반 교실. 김민서(9)양이 또렷한 목소리로 전남 순천 왕지초 유현명(9)군이 보내온 편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유군의 편지에서는 누군지 모를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양은 “얼굴도 모르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날아와 신기하다”며 “오늘 답장을 보내면 또 다시 편지가 오겠지”라고 말했다.

동일초와 왕지초가 손편지쓰기 운동에 동참, 영ㆍ호남을 넘어선 고사리 우정을 나누고 있다. 편지를 먼저 보낸 학교는 왕지초다. 36학급의 왕지초 전교생 985명이 지난 16일 동일초에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같은 학년끼리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만 정해졌을 뿐 수신자의 성별도 이름도 몰랐다. 편지는 20일 도착했다. 분류된 편지가 학급에 도착한 22일 이 학교 전교생 1,185명이 모두 답장을 보냈다.

이날 3학년 1반에 도착한 왕지초 친구들의 편지는 24통. 37명의 1반 학생들은 모둠별로 앉아 편지를 돌려가며 읽고 또 읽었다. 그림이 그려진 편지도 있고 색종이로 곱게 꾸민 편지도 있었다. 박준성(9)군은 “순천을 소개하는 내용이 많아 가보고 싶어졌다”며 “나도 대구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서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도움을 줘야겠다”고 말했다.

편지를 다 읽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나눠주는 엽서를 받아 들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얼굴 모를 친구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곧 순천만에 갈 건데 덕분에 많이 알게 되었어. 편지 써 줘서 고마워.” “우리학교에 놀러와! 내가 친구들을 소개해줄게!” “대구에 오면 이상화 고택에 꼭 가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쓴 유명한 시인이야.”

이경희(59) 동일초 교장은 “글씨는 비뚤비뚤하고 맞춤법이 틀리기도 하지만 참 따뜻하다”며 “어린이들이 사람에 대한 예절을 배우고 감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학교는 매년 3, 4회 ‘손편지 쓰는 날’을 정해 우정을 나누기로 했다. 전국우정사업본부도 손편지쓰기 운동의 취지에 공감, 동일초에 엽서 1,200장을 선물했다. 3학년 1반 김미경(45ㆍ여) 담임교사는 “현대인들은 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진심에 목마르다”며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쓴 손편지에는 카카오톡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할 수 없는 진정성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곳은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자전거편지손길 1 북한강철교쉼터 2층에 있는 손편지연구소다. 2012년 시작한 손편지쓰기 운동은 처음에는 방문객에 한정됐지만 최근 초등학교 간 손편지쓰기 운동을 펼치면서 처음으로 동일초와 왕지초가 참가했다.

이근호(55) 손편지연구소장은 “어린이들이 가장 순수하게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초등학교 간 손편지 교류를 시작했다”며 “작은 일이지만 이들의 마음을 담은 편지는 영호남 간 소통의 물꼬를 틀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모든 것이 너무 빠른 시대에 천천히 가는 ‘아날로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 손편지는 부산과 광주의 초등학교 사이에 오가게 된다. 조금 느리지만 그만큼 더 깊은 정이 묻어 나는 손편지가 섬마을과 산간 오지 또래 아이들을 묶는 우정의 가교가 될 게 분명하다.

글ㆍ사진 대구=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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