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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연구 9년 김승용씨 “’평안감사도…’는 왜 평양감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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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연구 9년 김승용씨 “’평안감사도…’는 왜 평양감사가 아닐까요”

입력
2016.10.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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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개의 속담을 자세하게 풀어 책으로 펴낸 김승용씨는 "9년간 속담에 매달리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계속 쓸 정도로 직업병이 됐다"며 "지혜가 담긴 속담 덕에 생활과 습관이 바뀌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3,000여개의 속담을 자세하게 풀어 책으로 펴낸 김승용씨는 "9년간 속담에 매달리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계속 쓸 정도로 직업병이 됐다"며 "지혜가 담긴 속담 덕에 생활과 습관이 바뀌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우리말 절대지식’서 속담 3000개 뜻풀이

문화ㆍ사회적 배경까지 짚어

“인문학 못지 않은 지식 담겼죠”

“단지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대로 알고 적절하게 써야죠. 속담을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말을 더 잘 알고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속담에는 우리말은 물론 우리의 문화, 정신이 담겨 있어 웬만한 인문학 못지않은 지식과 깨달음을 줍니다.”

9년간 우리 속담을 파고든 끝에 최근 ‘우리말 절대지식’(동아시아)을 펴낸 프리랜서 출판편집인 김승용(48)씨는 6일 본보 편집국을 찾아 “속담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의 옛 문화와 선조들의 생각을 많이 알게 됐다”며 “그 안에 담긴 지혜가 자기계발서보다 깊은 깨달음을 줘 생활방식과 습관까지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말 절대지식’의 형식은 관용구, 격언을 포함한 속담 사전이지만 그보다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이야기책에 가깝다. 단순히 속담의 뜻을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의 뜻과 속담이 나오게 된 문화ㆍ사회ㆍ심리적 배경을 치밀하게 짚는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을 놓고는 평양감사가 아니라 왜 평안감사가 맞는지, 여러 지역 감사 중 왜 하필 평안감사인지 자세히 설명한다. ‘꽁무니를 빼다’와 ‘떼어놓은 당상’ 같은 표현도 ‘꽁무니’와 ‘당상’의 뜻을 자세히 풀어 이해를 돕는다. ‘마름쇠’ ‘홍두깨’ ‘홈통’ ‘워낭’ 등은 직접 사진을 첨부해 뜻을 알게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2007년 속담 하나를 찾다가 “화가 나서” 속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서점에서 책을 읽던 중 ‘재미나는 골에 범 나온다’는 속담이 이해가 가지 않아 속담 사전을 여러 권 뒤졌지만 답을 못 찾은 것이다. 간단한 풀이만 있을 뿐 ‘재미’와 ‘골’, 범’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원스럽게 설명한 책은 없었다. ‘재미있는 일을 지나치게 좇다 보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 나오게 된 배경을 찾아 올라가니 ‘재미’가 ‘남녀상열지사’라는 걸 알게 됐다.

이후 김씨는 단순 뜻풀이에 머물러 있는 기존의 속담 사전과 다른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9년간 연구를 이어갔다. 기존 사전에 있는 수많은 속담 중에 3,000여개를 추렸다. “퍼즐을 풀 듯 조각나 있던 것이 연결되고 풀릴 때 생기는 희열”이 9년을 버티게 한 원료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를 놓고 몇 개월간 씨름하기도 했다. 김씨가 한쪽에 걸쳐 서당과 개, 풍월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긴 글을 읽고 나면 ‘분식집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표현이 원래 속담과 왜 다른 맥락에 있는지 알게 된다. 그는 “현대적 관점으로만 이해하려 하니 풀리지 않던 것이 옛날 사람의 시선으로 보려고 하니 답이 나왔다”라고 했다.

김씨는 오래도록 쓰이고 있는 속담을 풀이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비슷한 뜻의 최근 표현도 덧붙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다 된 농사에 낫 들고 덤빈다’에 ‘남의 신용카드에 자기 적립카드’를 추가하는 식이다.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에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대사 ‘너나 잘하세요’를 붙이고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타 한다’에는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을 붙였다.

그가 속담 책을 쓰게 된 데는 속담을 잘못 사용하는 문화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속담에는 지혜도 있지만 편견과 오해도 있습니다. ‘북어와 계집은 사흘에 한번씩 패야 한다’처럼 남성의 폭력적인 시선이 담긴 속담도 많은데 그건 일부러 뺐습니다. 속담을 잘못 쓰면 폭력이 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속담이 진리인 척 말하기도 하는데 속담은 경험칙에 불과합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김씨는 속담에 숨어 있긴 언어적 유희와 운율, 리듬이 현대의 랩 가사와 닮아있다고 했다. 현대적 변용은 그런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내 알바 아니면 내 알 바 아니다’ ‘청순 자라 청승 된다’ ‘싸가지가 바가지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속담을 무심코 쓰지 말고 조금만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 모두 주마간산 식으로 살고 있지만 멈춰서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인생이 있고 철학과 이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가 생각한 것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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