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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팻말 민망한 지역 관광 질적 개선 활로를 찾자

입력
2016.12.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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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설악동(위)과 수안보온천은 변화하는 관광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해 경쟁력을 상실, 침체의 늪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0~80년대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설악동(위)과 수안보온천은 변화하는 관광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해 경쟁력을 상실, 침체의 늪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에 둔감 수십년 전 그대로

해외여행 는 국민 눈높이 못 맞춰

官에 기댄 채 활성화 의지도 빈약

“주민 스스로 관광산업 중심 돼야”

지난달 말 충북 옥천의 장계국민관광지를 찾았을 때다. 옥천향토전시관이 있길래 뭐 재미난 것이 있나 둘러보다 혀를 차고 나왔다. 전시품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활사 유물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왜 전시를 했는지 의아한 것들도 있었다. 특히 지하 전시실의 한쪽 벽면에는 북과 징, 상모 등 국악기들이 괘종시계, 축음기, 다이얼전화기, 기타 등과 나란히 전시돼 있다. 그 사이에는 김세레나와 미국 록밴드 이글스의 레코드 판도 섞여 있었고, 바로 옆에는 양은냄비와 주전자, 바리캉이 자리하고 있다. 배치엔 일관된 주제가 없었고 전시물에 대한 해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관람동선이나 조명 등 기술적인 문제는 거론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문제는 각 지자체의 향토전시관 대부분이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옥천향토전시관의 생활민속전시실. 전시한 물품이 연관성과 통일성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설명도 없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옥천향토전시관의 생활민속전시실. 전시한 물품이 연관성과 통일성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설명도 없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옥천향토전시관 계단에 걸려있는 지역 비석 탁본. 전시실이 아닌 조명도 부실한 계단 벽면에 걸어놔 훼손되기 쉽고 바라보기도 힘들다.
옥천향토전시관 계단에 걸려있는 지역 비석 탁본. 전시실이 아닌 조명도 부실한 계단 벽면에 걸어놔 훼손되기 쉽고 바라보기도 힘들다.

향토전시관뿐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을 부르짖고 있지만, 막상 지역의 관광사업 상당수는 아무도 찾고 싶지 않은 향토전시관을 닮았다. 관광객의 취향이나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대한 고려 없이 지역의 이것저것을 마냥 늘어놓기만 하는 식이다. 손님 맞을 준비 없이 왜 안 오냐 푸념만 하다가, 뭣 좀 지어달라며 정부에 손만 벌리는 게 지역 관광의 현실이다. 해외여행 등으로 눈높이가 높아진 관광객들에게 허술한 관광지들이 성에 찰 리가 없다.

‘국내여행은 번잡스럽다’는 이미지를 구축시키고 있는 건 한때 잘 나갔다가 쇠락한 관광지들이다. 강원 속초의 설악동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정부 주도로 개발돼 국내의 대표적 관광지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변화하는 관광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쟁력을 상실, 지금은 상가와 숙박업소 상당 수가 문을 닫는 등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충북 충주의 수안보온천단지도 비슷하다. ‘왕의 온천’이란 명칭이 무색할 만큼 수십 년 째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악동이나 수안보온천 등의 침체 얘기는 한 두 해가 아니다. 매 선거철이면 이들 지역의 회생을 위한 공약이 난무하지만 제대로 결실을 이룬 건 없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도입, 성장, 성숙, 쇠퇴기로 이어지는 S자 곡선의 생애주기를 겪기 마련이다. 김성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경영기획실장은 “슬럼화된 이런 관광지들은 땜질 처방으론 쇠락을 벗어나기 힘들다”며 “한류 명소로 거듭난 남이섬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갖춰져야만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의 설악동 관광단지.
을씨년스러운 풍경의 설악동 관광단지.
부산 감천문화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경승지나 온천, 유적지 중심의 숱한 관광지들이 쇠락해온 반면, 도시재생 등의 최근 트렌드를 타고 새로 뜨는 관광지들도 많다. 하지만 관광객이 몰린다고 환호만 들리는 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며 관광지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놀러 왔다지만 그 곳은 주민들에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최근 마을에선 유료화, 마을지도 강매 등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서울의 북촌과 서촌, 이화동 벽화마을 등도 비슷하다.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사생활이 침해되면서 주민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베를린 등 외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일어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조짐까지 우려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서 파생된 말로 일반 주거지역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거주민의 생활이 위협받아 결국 이주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화동 벽화마을의 경우 주민들이 마을의 벽화를 지워버리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각 지자체장은 관광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 부르짖지만 실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실장은 “지방선거 때마다 관광 관련 공약이 쏟아져 나오지만 선거 후엔 실제 예산이 투입되지 않고 있다”며 “지자체들의 관광에 대한 의지와 전문성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단체장은 자신의 임기 안에 성과를 내려고만 해 부실한 사업들만 양산되기 일쑤다. 또 지역의 관광사업이 연속성을 갖지 못해 생기는 낭비도 심각하다. 단체장이 바뀌면 이전 단체장이 쌓아놓은 결실이 신임 단체장에겐 지워야 할 숙제가 되곤 한다.

지역민들의 의지도 문제다. 외국의 경우 민관협의체가 잘 발달돼 있어 관광 개발에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나 직접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에서 해주기만을 바라는 식이다. 또 투입된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수 년 전 대구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나섰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수 억의 예산을 들여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고 홍보를 돕겠다 하니 상인들이 ‘쓸데없는 소리 말라. 그냥 그 돈을 똑같이 나눠달라’ 해 결국 사업을 접고 예산을 반납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역관광 활성화가 단순히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추진될 경우 여러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방문객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광객의 소비가 지역 내에 순환해 주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관광두레’가 그 대안 중 하나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관광사업 공동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법인체를 만들어 숙박 음식 등 관광사업을 경영하는 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매년 5곳을 선정 추진해왔고, 지금까지 37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관광두레를 총괄하고 있는 김성진 실장은 “결국 관광 혜택이 지역사회와 주민에 돌아가야 관광사업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며 “주민 스스로 관광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춰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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