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등록 : 2016.12.14 17:00

뜨거운 구들장서 뒹굴 뒹굴…상팔자 따로 없네

[논개 고향 장수여행]하늘내들꽃마을 온돌방 체험 후 육십령휴게소서 돈까스 식사

등록 : 2016.12.14 17:00

온돌은 우리 민족의 슬기가 녹아있는 난방시스템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농촌이든 산촌이든 구들을 데워 난방을 하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직접 불을 때는 대신 물을 데워 순환시키는 보일러가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다. 아궁이에 지피는 군불이 그립고, 뜨거운 방바닥에 늘어지게 지지고 싶으면 이제 그런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를 찾는 수밖에 없다. 군불로 온돌방을 데우는 전북 장수의 한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겨울에는 뜨끈한 방바닥에서 등 지지는 게 최고. 아궁이불로 데운 구들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장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뒹굴 뒹굴 상팔자, 등이나 지질 것이지

장작을 준비하고 불을 때는 것까지는 기본적으로 숙박업소 몫이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해보기로 했다. 인근 산림조합에서 사왔다는, 일정한 길이로 자른 목재가 황토 집 마당 한 귀퉁이에 수북이 쌓여 있다. 장작패기는 우락부락한 등 근육 자랑하는 마당쇠가 아니라, 도끼 날 달린 유압 프레스가 대신한다.

아무리 잘 마른 장작이라도 성냥이나 라이터로 바로 불을 붙일 수는 없는 법,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불쏘시개다. 잘 마른 솔잎이나 잔가지를 한 움큼 긁어 모아 성냥을 긋고, 매캐한 연기에 눈물 찔끔거리며 볼이 터져라 입김을 불어대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해서 밑불을 붙이던 번거로운 과정도 필요치 않다. 아궁이 한 켠에는 가스통에 연결된 토치(국립국어원은 ‘불대’가 순화된 단어란다)가 준비돼 있다. 불씨만 있으면 강력한 화력을 뿜는 기계 덕분에 불쏘시개는 신문지 한 장이면 충분하다. 덜 마른 장작이라도 단 몇 분이면 활활 타오른다. 불길이 사그라든다 싶으면 이 과정을 두어 차례 반복한다. 부지깽이로 바람구멍을 내고, 경과를 봐가며 장작을 밀어 넣던 수고도 옛날 얘기다. 처음부터 장작을 아궁이에 가득 채우고 토치로 한꺼번에 불을 붙이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요즘은 가스 토치를 이용하기 때문에 장작에 불을 붙이기도 어렵지 않다.

장수군 하늘내들꽃마을은 폐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구들방 5동을 운영하고 있다.

TV가 없는 숙소는 밤이 길다. 방바닥에 배 깔고 읽을 책 한 권은 꼭 챙겨 가는 게 좋다.

아궁이 위에 으레 놓여있던 솥 단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궁이불로 물을 데울 일도 밥을 지을 일도 없다. 온돌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하여 때는 불, 군불은 오로지 사전적 의미대로 한가지 목적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다. 화력이 정점을 찍고, 발갛게 달아오른 장작이 희끗희끗하게 재 허물을 벗을 즈음 재미 삼아 감자나 고구마는 구워먹을 수 있겠다.

철판으로 된 아궁이 뚜껑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깔아두었던 이불 속은 이미 온기가 가득하다. 누런 기름 종이 장판이 황갈색으로 변한 자리, 불 자국이 남은 곳이 아랫목이다. 그곳에 등을 대고 어깨에서 발뒤꿈치까지 최대한 방바닥에 밀착시킨다. 서서히 달아오른다. 온몸이 녹아 내리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점점 뜨거워지는 바닥에 맨 몸을 댈 수 없어 담요를 하나 깔았다. 두께 30㎝가 넘는 흙벽 덕분에 외풍도 없으니 이불도 걷어찼다. 달궈진 구들장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골고루 지진다. 상팔자가 따로 없다. 촛불과 탄핵정국에 누군가는 장을 지지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자기부정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몸부림쳐도 안될 일에 매달리지 말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등짝이나 지질 것이지.

문 밖은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깜깜해졌고, 오후 9시가 지나자 심리적인 시간도 한밤중이다. 텔레비전도 와이파이도 없으니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장을 뒤적이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산짐승 울음 섞인 바람소리 가물가물해지고 언제인지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펜션 소재지인 장수 천천면을 한글 이름으로 바꾼 ‘하늘내 들꽃마을’에서 보낸 하룻밤이다.

▦논개 자취 둘러보고 육십령에서 돈까스를

논개라고 하면 진주 촉석루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의 충절과 애국심을 기리는 마음은 고향인 전북 장수가 한 수 위인 듯하다. 장수읍내에 자리한 논개사당은 웬만한 애국지사의 묘역 못지않은 규모다. 그를 관기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의아한 수준이다. 장수군 문화관광해설사 권정임씨는 꼬박꼬박 ‘논개님’으로 호칭했다.

장수읍내에 위치한 논개사당. 장수사람들의 논개에 대한 애정은 진주를 능가하는 듯하다.

논개사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장수 풍경.

논개가 태어난 주촌마을은 논개사당에서 약 13km 떨어져 있다.

논개사당의 공식 명칭은 그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바위에서 이름을 딴 의암사(義巖祠), 197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지만 논개에 대한 장수사람들의 자부심은 훨씬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해설사가 가장 공을 들여 설명하는 것은 사당 중간부분에 자리잡은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 1846년 당시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가 장수 태생임을 기리기 위해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을 쓴 비석이다.

애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읍내 옛 시장에 세운 비석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주민들이 나서서 부수는 척 하면서 인근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빛을 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가장 꼭대기에 자리잡은 사당에는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논개 전신 영정이 걸려 있다. 그의 얼굴은 장수지역에 거주하는 신안주씨 성을 가진 인물을 촬영하고, 유전자를 분석해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그렸다. 장수군과 진주시가 공동으로 공모한 영정은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됐다. 사당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 산책로를 정비한 의암호 뒤로 분지가 넓게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해발 1,151m 팔공산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논개가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약 13km 떨어진 장계면 대곡리, 논개의 성씨인 신안주씨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주촌마을로 부른다. 많은 이들이 주논개를 기생으로 알고 있지만, 장수군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 당시 장수현감이던 최경회의 부실(副室)이라고 주장한다. 진주까지 가게 된 연유도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최경회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그가 순절하자 8일 뒤 왜군의 승전 연회에 관기로 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는 것이 개략적인 줄거리다.

육십령휴게소에서 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특급호텔 조리사 출신 조철 셰프.

주 메뉴인 장수돈까스의 기본 소스는 장수 사과로 만든다.

육십령휴게소에서 본 장수 장계면 풍경.

논개 묘소는 장수가 아닌 이웃 함양군 서상면에 자리잡고 있다. 장계에서 서상으로 가는 길은 26번 국도의 육십령(734m)을 넘는다. 육십령이라는 명칭은 장수감영과 안의감영(현 함양군 서상면)에서 각각 60리라는 설, 고갯길이 굽이굽이 60번은 휘어져 있다는 설, 험준한 산길에 도적들이 많아 장정 60명은 함께 넘어야 안전하다는 설 등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바로 아래로 대전통영고속도로가 통과하기 때문에 지나는 차량이 드문데도 육십령휴게소에는 늘 몇 대씩 정차하고 있다. 쉐라톤워커힐과 스위스그랜드 등 서울의 유명 호텔 조리사 출신인 조철(56)씨의 돈까스를 맛보려는 발걸음 때문이다. 조씨의 요리 철칙은 로컬푸드와 슬로푸드, 지역의 농산물을 재료로 정성껏 차려내는 것이다. 주 메뉴인 ‘장수돈까스’는 지역 특산품인 사과를 주재료로 쓴다. 돈까스 소스와 샐러드 드레싱의 베이스는 당연히 사과이고, 수프도 사과를 기본으로 계절에 맞게 감자, 고구마, 단호박 등을 섞어 만든다. 돈까스 외에 까르보나라와 스파게티도 판매하는데 여행객뿐만 아니라 인근 장수와 함양의 어르신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자칭 ‘조용한 시골마을의 소박한 요리사’ 덕분에 산골마을 어르신도 ‘고급스러운’식탁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장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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