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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캐프리오의 꿈' 이뤄준 그 감독이 궁금해

입력
2016.03.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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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멕시코에서 나고 자랐고, 멕시코에서 주로 활동했다. 좀 늦게 영화계에 발을 디뎠고, 빠르게 인지도를 얻었다. 멕시코 라디오방송에서 진행자로 시작한 이력은 TV와 광고 연출, 영화음악 작곡을 거쳐 영화 연출에 이르렀고, 종국엔 할리우드까지 다다르게 됐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레버넌트)로 지난해에 이어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53) 감독의 범상치 않은 다재다능한 이력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이냐리투는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감독이다. 월드시네마(제3세계 영화라고도 한다) 영역에서 경력을 쌓고선 할리우드의 주요 인사가 됐다. 할리우드의 전설 존 포드와 조셉 맨키위츠 감독 이후 사상 세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2연패했으나 주류라는 수식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의 멕시코 동료 기예르모 델 토로(‘퍼시픽림’)나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 감독과 달리 그는 여전히 월드시네마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색깔을 지키면서 할리우드의 인적ㆍ물적 지원을 받는다.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세계 여행이 빚어낸 코스모폴리탄

이냐리투의 장편 영화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
이냐리투의 장편 영화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

이냐리투는 16세 때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배를 타기 전 그의 주머니에는 100달러가 있었다. 부유하지 못했으나 아들이 호연지기를 품고 살아가길 원했던 그의 아버지가 준 ‘선물’이었다. 화물선에서 일을 도우며 그는 2년 동안 세계를 주유했다. 10대 후반에 경험한 선원 생활과 세계 여행은 이냐리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냐리투 영화의 무국적성과 다국적성은 10대 후반에 싹텄다.

이냐리투는 2000년 첫 장편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로 세계 영화계에 자신을 알렸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옴니버스영화는 개를 매개로 지옥도 같은 멕시코의 현실을 전한다. ‘아모레스 페로스’로 그는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받았다. 곧바로 그는 할리우드 배우 숀 펜과 나오미 와츠, 베니치오 델 토로를 주연으로 한 ‘21그램’(2003)을 연출한다. 자국에서 한 동안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어 가다가 외국 자본이나 인력과의 작업을 모색하는 여느 예술영화 감독과 달리 빠르게 할리우드에 진입한 셈이다.

세 번째 장편영화 ‘바벨’(2007)의 조합도 묘하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랜챗,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와 신인 기쿠치 린코가 출연한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처럼 단 하나의 서사로 영화를 전진시키지 않고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바벨’은 모로코 여행 중 미국 여인 스잔(케이트 블랜쳇)이 총격을 당하면서 미국과 멕시코,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나비효과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인데 제목이 암시하듯 지구촌이라는 수식 속에 살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 인류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은유한다. 이냐리투는 ‘바벨’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멕시코 감독으로선 모두 최초의 일이다.

이냐리투는 2010년 ‘비우티풀’로 제3세계 예술영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스페인 출신의 유명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주연으로 내세웠으나 ‘비우티풀’은 월드시네마로서의 특징으로 무장했다. 관광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캔버스 삼아 세계화가 만들어낸 지옥도를 그려낸다. 말기암에 시달리면서 어린 두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남자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을 중심으로 한 불법취업자들과 스페인 빈민의 비극적 삶이 가슴을 누르는 작품이다. 스페인어권 출신이라는 감독의 정체성, 남미와 스페인을 잇는 정신적 연결고리에 대한 묘사,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휩싸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동정 등이 뒤섞인다.

영화 주변부에서 할리우드 중심으로

영화 '버드맨'.
영화 '버드맨'.

이냐리투가 4년 만에 내놓은 ‘버드맨’(2014)은 낯설다. 그의 영화 궤적에서 꽤 많이 이탈한 영화다. 마이클 키튼과 나오미 와츠, 엠마 스톤, 에드워드 노튼이 출연한다. 할리우드 배우를 곧잘 캐스팅해 온 이냐리투이기에 배우 진용은 특별하다 할 수 없다. 무국적 또는 다국적성을 띠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버드맨’의 배경과 이야기 얼개는 지극히 미국적이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가 주요 공간적 배경인 이 영화는 미국 유명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사랑을 이야기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로 한때를 풍미했으나 브로드웨이의 퇴물이 된 리건(마이클 키튼)의 망상과 일상을 그려내며 냉혹한 쇼비즈니스의 세계를 전한다.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사연을 재즈 음악을 곁들이며 끊김 없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묘사하는 형식미가 인상적이다. 곁가지를 뻗을 것 같은 개개 인물의 사연을 리건의 욕망으로 수렴해내는 연출력으로 이냐리투는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았다.

‘버드맨’은 멕시코 출신 이냐리투라는 이국성을 제외하면 온전한 할리우드 영화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세계의 여러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저 일상이다. 월드시네마의 영역에서 할리우드 스태프와 협업하거나 자본의 지원을 받는 길을 걸어온 이냐리투는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감독’이 된다.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 에밀 쿠스트리차(‘아리조나 드림’)나 독일 유명 예술영화 감독 빔 벤더스(‘해밑’), 박찬욱(‘스토커’) 감독 등이 할리우드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경우와 대조적이다. 이냐리투의 상대적으로 짙은 무국적성이 할리우드 착근에 큰 힘이 됐으리라.

‘레버넌트’로 이냐리투는 할리우드에 안착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는 큰 별과 톰 하디, 돔놀 글리슨이라는 또 다른 별들이 주연한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3,500만달러(약 1,630억원)다. 블록버스터급에 해당하는 제작비가 들어갔는데도 이냐리투는 자기 연출 방식을 버리지 않는다. 미 대륙에서 펼쳐지는 초인적인 활극에 오락성을 극대화하기보다 오래 찍기와 자연광 고수라는 작가주의 스타일을 새긴다. 그는 지난해 연말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절에서 볼 만한 영화”라고 ‘레번넌트’를 소개했다. 그는 “왜 사람들이 놀랍고 볼거리가 가득 차고 흥겨운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만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며 “왜 대작은 지적이거나 인간애를 지녀서는 안 되냐”고도 물었다.

배우에게 영예를 안기는 감독

영화 '바벨'의 브래드 피트.
영화 '바벨'의 브래드 피트.

이냐리투는 자신의 영화이력을 통해 스타를 만들기도 했으나 스타에 강하게 기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발판으로 스타는 더욱 높은 인지도를 얻거나 이전에는 얻지 못한 명예를 가져갔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주인공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이냐리투를 통해 스페인어권 스타가 됐고 곧 월드 스타로 자리잡았다. 펜은 ‘21그램’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받으며 연기 인생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피트는 ‘바벨’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드물게 올랐고, 바르뎀은 ‘비우티풀’로 칸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받았다.

‘버드맨’은 키튼의 부활을 알렸다. 1990년대 ‘배트맨’ 시리즈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 배우는 ‘버드맨’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다. 디캐프리오는 ‘레버넌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처음 거머쥐며 많은 화제를 뿌렸다. 배우들에게 이냐리투는 유명 영화상 수상권에 근접하는 일종의 발판인 셈이다. 디캐프리오가 이냐리투와 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아카데미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아버지의 사랑

영화 '비우티풀'.
영화 '비우티풀'.

이냐리투의 영화세계를 특정 단어로 꼬집어 수식할 수는 없다. 그의 영화들은 정치적인 듯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바벨’, ‘비우티풀’은 매우 현실 비판적이나 특정한 정치적 상황을 묘사하거나 명확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통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냐리투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관점을 예술에 종속시키려 하지 않는다”라며 “감독이 아닌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영화를 만든다”고 밝혔다.

정치적이지 않다 보니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종종 출구가 없다. 잔인한 세상에 대한 묘사는 있으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환상을 비추거나(‘비우티풀’) 주술적으로 마무리 되거나(‘레버넌트’) 염세적(‘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으로 끝을 맺는다.

이냐리투의 영화를 그나마 표현해내는 수식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바벨’의 리처드는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모로코 여행에 나섰다가 비극적 상황을 맞는다. 아내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리처드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는다. ‘비우티풀’의 욱스발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 남미 대륙으로 떠난 아버지를 종종 떠올린다.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욱스발은 죽은 뒤에 자신보다 젊은 아버지와 마주한다. 비극으로만 내달리던 영화는 아버지와 조우한 욱스발의 환한 웃음으로 힘겨운 현실을 초월하려 한다. ‘레버넌트’는 동료에게 아들을 잃은 휴 글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믿기 힘든 모험에 초점을 맞춘다. 애끊는 부정(父情)에서 비롯된 복수심이 상영시간 156분을 관통한다. 이냐리투가 ‘레버넌트’ 연출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글래스와 아들의 사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냐리투의 관심은 그의 여러 인터뷰와 아카데미 수상소감 등에서도 드러난다. 이냐리투는 부자가 아닌 아버지에게서 많은 삶의 지침을 얻었다고 밝혀왔다. 그는 ‘비우티풀’의 엔딩크레딧이 오를 무렵 ‘떡갈나무 같은 나의 아버지에게’라는 헌정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이냐리투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2연패한 뒤 “아버지가 피부색은 머리카락의 길이만큼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부친의 말을 빌려 밝힌 것이다.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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