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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그놈 목소리… 갈수록 교묘한 보이스피싱에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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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그놈 목소리… 갈수록 교묘한 보이스피싱에 초긴장”

입력
2015.1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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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금융사기대응팀 찾아가보니.. 요즘 ‘김치냉장고 사기’ 극성

지연인출제 확대 등 규제 확대에 또 진화.. ‘레터 피싱’ ‘직원 사칭’ 등도

김용실(가운데)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 팀장이 1일 직원들과 최근 발생한 '레터피싱' 사건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김용실(가운데)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 팀장이 1일 직원들과 최근 발생한 '레터피싱' 사건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안녕하세요. 금융감독원 김석호 사회지원팀 대리입니다. 이옥분(가명)씨 맞으시죠? 어르신 은행 계좌가 모두 노출됐습니다. 가지고 계신 예금을 다 찾아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세요. 제가 댁에 방문해 안전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금융사기를 예방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하는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에는 요즘 신종 보이스피싱인 ‘김치냉장고 사기’ 비상이 걸렸다. 수법은 이렇다.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전화를 걸어 ‘가진 돈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서 김치냉장고나 장롱,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 두면 우리가 찾아 가서 안전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한다. 이후 피해자 집에 몰래 들어가 해당 장소에 있는 돈을 훔치거나, 금감원 직원이나 수사관 신분증을 패용하고 나타나 돈을 가져간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 같은 보이스피싱을 통한 침입절도와 대면편취 사건이 올해(10월 말 기준)만 각각 102건, 77건 발생했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극성이다. 올해 총 발생 건수의 절반 가량이 9월(55건)과 10월(34건)에 발생했다.

1일 기자가 찾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13층 금융사기대응팀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 “어제도 김치냉장고 사기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13명의 직원들은 사건 파악을 위한 회의로 분주했다. 이들이 파악한 이번 사건의 피해액은 현금 2,700만원. 범인이 피해자에게 제시했다는 가짜 명함을 살펴봤다. 얼핏 보면 금감원 직원들의 진짜 명함과 유사했다. 하지만 실제 금감원에는 가짜 명함에 적힌 사회지원팀이라는 조직이 없다. 대리, 과장, 부장도 없다. 금감원에는 조사역, 선임조사역, 팀장, 국장 등이 있을 뿐.

김용실 팀장은 보이스피싱이 이런 대범한 행태로까지 나타나는 원인으로 “은행에서 대포통장을 근절하려고 계좌 개설 요건을 까다롭게 요구하고 지연인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9월부터 기존 30분 지연인출제가 적용되는 기준 금액을 3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췄다. 사기범들이 보이스피싱에 성공해 돈을 입금 받더라도 30분이 지나야 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적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금융사기는 이렇게 끝없이 진화한다. 금융사기대응팀 직원들 사이에서 ‘금융사기범 연구소’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요즘 들어선 ‘레터피싱’도 부쩍 기승을 부린다. 수사기관을 사칭해 출석을 요구하는 가짜 공문을 보내서 공문에 적힌 안내 번호로 문의 전화가 오면 그 때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금융사기대응팀 직원들도 늘 사기에 이용될까 노심초사한다. 최근에는 조성목 선임국장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6건이나 발생했다. 장길호 선임조사역은 “금감원 직원 사칭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떤 민원인들은 처리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금감원입니다’라고 전화하면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이라는 소리만 듣고 보이스피싱이라고 판단해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금융사기대응팀 직원들은 금융사기의 심각성은 단순히 피해규모와 같은 숫자로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성재 조사역은 “가족들을 의식해 행정절차 관련 통지서들을 집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동안 금융사기대응팀이 쏟아낸 각종 정책 효과가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사기범의 목소리를 공개한 ‘그놈 목소리’ 체험관 문을 열면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장기 미사용계좌의 거래중지제도와 자동화기기의 지연인출제 강화 등 규제도 한 몫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금융사기 피해액은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22.6%(459억원) 줄었다.

고수들이 생각하는 금융사기 대응법을 물어봤다. 금융사기대응팀 직원들은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전화는 일단 끊고 걸려온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보이스피싱이면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걸려온 번호가 아닌 해당 기관의 대표전화로 전화를 해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돈을 송금한 뒤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면 바로 해당 은행 콜센터에 전화해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30분 내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사기범이 돈을 인출할 수 없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금융사기대응팀이 되돌려주는 피해 환급액만 하루 평균 2억5,000만원 수준이다. 조성목 선임국장은 “그놈 목소리 공개나 환급 제도 등 여러 방안을 동원해 보이스피싱 같은 민생침해 범죄를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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