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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내 모습? 그게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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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내 모습? 그게 뭐 어때서!”

입력
2015.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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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는 휠체어

프란츠 요제프 후아이니크 글ㆍ베레나 발하우스 그림ㆍ김경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발행ㆍ30쪽ㆍ7,500원

이불 속에서 한두 시간은 뭉그적대다 겨우 일어나는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툴툴댄다. 이 세상에는 벌떡 일어날 뿐 아니라 달려 나가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잔뜩 있다. 그리고 마르기트도 있다. ‘내 다리는 휠체어’의 주인공 마르기트는 날마다 오전 7시쯤 눈을 뜬다. 곧장 침대 위에서 머리맡에 둔 옷을 집어 입기 시작하는데 다 입으면 9시쯤 된다. 다음은 뻣뻣한 다리를 잡고 침대 모서리로 몸을 옮겨 휠체어를 탈 차례. 요컨대 세상 사람들이 맞이하는 아침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로우며 그 모든 아침이 각자에겐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걸 잊지 말자는 거다.

마르기트가 엄마 심부름을 간다. 혼자 가게에 가는 건 처음이라 신이 났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방학이라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아 더욱 신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휠체어 탄 마르기트를 힐끔거리고, 마르기트에게 말을 걸려던 아이는 엄마에게 제지당하고, 건널목 파란 신호등은 너무 빨리 꺼지고, 보도의 턱은 너무 높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멀쩡하게 제 갈 길 잘 가는 마르기트가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차고, 가게 점원은 물건을 집으려 할 때마다 대신 집어준다. 아이가 항의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으니 그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마르기트는 분통이 터진다. “도대체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넌 휠체어를 타고, 난 다른 아이들보다 뚱뚱해”라는 말을 들은 마르기트는 생각한다. 그래서? 주니어김영사 제공
“넌 휠체어를 타고, 난 다른 아이들보다 뚱뚱해”라는 말을 들은 마르기트는 생각한다. 그래서? 주니어김영사 제공

따뜻한 주홍빛을 주조로 차분하고 세련된 색감, 간결한 검은 선이 정갈하다. 얼핏 보기엔 얌전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책인데 들여다볼수록 조곤조곤 꽤나 신랄하다. 작가는 에두르지 않는다. 사람들의 무례함, 무감각, 과잉 친절은 결국 뿌리가 같다. 마르기트가 거리에서 만난 아이, 뚱뚱보라고 놀림당하는 지기가 말한다. “넌 휠체어를 타고, 난 다른 아이들보다 뚱뚱해.” 그래서? 그러니 “너도 나도 별난 사람”이라는 지기의 말을 마르기트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뭐 특별한 거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르기트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도 참 안돼 보이시네요.” 막대사탕을 할머니 손에 쥐어준다. “이것 드시고 기분 좋아지세요.” 하하, 예상치 못한 반격, 참으로 멋진 뒤집기 한 판이다.

끝내 마르기트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말에 동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다르지 않다. 마르기트는 알고 있다.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차별’, 그리고 ‘인권 감수성’이라는 것을. 정말 기특한 녀석이다. 오스트리아 아동·청소년 그림책 대상 수상작.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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