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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판도라의 항아리를 앞에 두고 벌어지는 공방전

입력
2017.09.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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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6년작 '판도라'. 원래 판도라의 항아리였으나 에라스무스의 번역 실수로 판도라의 상자로 알려졌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6년작 '판도라'. 원래 판도라의 항아리였으나 에라스무스의 번역 실수로 판도라의 상자로 알려졌다.

누군가를 설득해 본 적 있는가. 설득의 기술은 오랜 수련이 필요한 최선의 덕이다. 한 사회를 이끄는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며, 한 사회가 유지되고 번영하기 위한 필수적인 문법이다. 설득은 자신의 주장을 용기 있게 포기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설득은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한 마음이 낳은 자식이다. 설득은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려는 마음이며, 상대방의 주장이 자신의 주장보다 탁월하다면, 그것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용기다.

설득은 고통, 곧 페이쏘스(peithos)

우리가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청을 연습하고 수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자신의 멋진 삶을 위해 상대방의 탁월한 식견은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경청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원대한 비전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에 안주하려는 게으름 때문이며, 자신의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경험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테네인들은 ‘설득’을 그리스어로 ‘페이쏘스(peithos)’, 즉 ‘고통(苦痛)’이라 말했다. 우리가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장점이자 생존전략인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우리의 이런 겸허한 마음을 상대방은 금세 감지한다. 인류가 문자와 도시를 구축하여 문명사회를 구가했지만 그들은 오래된 전통과 관습, 신화와 종교에 의존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인류 최초로 민주사회를 구축하면서,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혁신할 예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설득이다. 그리고 그 설득을 수련하는 장소가 바로 아테네 법정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전에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아테네 법정으로 가져와 자신의 설득의 기술로 정의(正義)를 추구하였다.

법정 위에 등장한 거대한 항아리

비극 ‘자비로운 여신’이 공연되는 무대는 이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오레스테스 재판이 열리는 아레오파고스 법정으로 변했다. 이 비극을 지켜보던 아테네인들은 그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무대를 만드는 인물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여, 널찍한 나무 탁자를 배치하고 그 위에는 커다란 항아리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 옆에는 아테네 여신이 선택한 공명정대한 12명의 배심원이 앉을 기다란 벤치가 있다. 무대감독이 신호를 주자, 12명의 배심원이 자리를 잡고, 그 뒤에는 십여 명의 아테네 시민들이 직접 이 역사적인 광경을 관람하기 위해 무대 뒤편에 서있다. 이들은 이 비극을 숨죽여 보고 있는 아테네 시민들과 심리적으로 동일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말을 좀 더 생생하게 들을 것이다.

아테네인들의 눈은 탁자 위에 올려진 항아리에 쏠렸다. 이 항아리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들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이 항아리와 관련된 신화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바로 인간창조와 ‘판도라’라는 여자창조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진흙과 물로 인간을 창조하도록 요청하였다.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그를 도와 인간을 만들게 했다.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동물을 창조하여 용맹성, 신속성 등 많은 신적인 선물을 주었다. 에피메테우스가 동물에게 선물을 모두 주어 인간에겐 줄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신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두 가지 선물을 준다. 하나는 ‘두 발로 걷고 뛸 수 있는’ 이족보행능력과 사냥한 동물을 구워먹을 수 있고 추위를 물리칠 수 있는 불이다.

첫 여성 ‘판도라’의 탄생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작가 헤시오도스는 이 항아리에 관련된 신화를 기록했다. 제우스는 신의 특권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판도라’라는 또 다른 인간인 ‘여자’를 창조하라고 시켰다. 고대 그리스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판도라 이야기에는 여성비하적인 요소들이 담겨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흙을 가지고 첫 번째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라고 명령한다.

헤르메스는 판도라를 거짓말하는 능력을 가진 여신처럼 아름답게 창조하였다. 아테나는 그녀에게 은빛 의상을 입히고 직물을 짜는 솜씨를 선사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에게 금빛 왕관을 주었고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머리에는 은총을 부어 주었고 동시에 그녀의 사지를 약하게 만드는 욕망과 걱정도 주었다. 신들은 그녀를 그리스어로 ‘모든(pan) 선물(dora)을 지닌 여자’라는 뜻을 지닌 ‘판도라(Pandora)’라고 불렀다.

프로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제우스가 자신들에게 복수하려는 계략이 담긴 선물이라고 파악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선견지명’이란 의미다. 그는 자신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스어로 ‘에피메테우스’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에피메테우스 집에는 제우스가 선물한 ‘항아리’가 있었다. 이 항아리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 호기심의 상징이다. 인간의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시기와 질투를 감춘 항아리다. 판도라는 집안에 장식된 또 다른 신의 선물인 항아리를 선망의 눈길로 하루 종일 보았다.

판도라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그만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서 분쟁, 병, 노동 그리고 수많은 병들이 마치 새처럼 뛰쳐나왔다. 판도라는 겨우 뚜껑을 닫아 항아리 밑바닥에 있었던 ‘희망’만은 간직했다. 이 희망을 그리스어로 ‘엘피스(elphis)’라고 부른다. ‘엘피스’의 또 다른 의미는 ‘기대’다. 이 세상에 많은 불행이 존재하지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만은 존재해야 한다는 바람의 표현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 ‘기대’도 제우스가 의도한 불행의 일부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틀렸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판도라 상자’라고 잘못 알게 된 연원이 있다. 이 신화를 처음으로 기록한 헤시오도스는 ‘피쏘스(pithos)’라는 그리스 단어를 사용하여 커다란 항아리를 염두에 두었다. 이 항아리는 회의주의 철학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큰 항아리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항아리를 축제에 사용할 포도주나 곡식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하였고 혹은 죽은 자를 매장하기 위한 관으로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이며 인문주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에라스무스가 ‘피쏘스’라는 단어를 실수로 잘못 번역하여 ‘상자’라 했다. 에라스무스는 헤시오도스의 그리스 원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그리스 단어 ‘피쏘스’의 의미를 파악하는 대신, ‘피쏘스’와 발음이 유사한 라틴어 단어 ‘퓍시스(pyxis)’로 대체했다. ‘퓍시스(pyxis)’는 상자라는 뜻이다. 이후 만들어진 ‘판도라의 상자’라는 개념이 유럽에 퍼져 아직도 우리는 그리 알고 있다.

판도라의 항아리, 도시문명의 뿌리

아테네 시민들은 무대 위에 있는 12명의 배심관과 아테네인들이 되어 지근거리에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재판을 목격한다. 그들은 무대 중앙에 위치한 항아리를 보고 깊은 상념(想念)에 빠진다. 그들은 더 이상 이 비극의 관람자가 아니라 참여자다. 그들은, 두 단계를 거쳐 이 비극작품에 몰입한다. 그들은 더 이상 관객이라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가 된다. 그들은 첫 단계로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들의 동료 아테네 시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친구인 배심원들이 되어 긴 벤치에 앉아 중요한 판결을 내리는 투표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은 눈앞에 놓인 항아리를 통해 아테네 문명이 상징하는 민주주의를 실험할 것이다. 이 항아리는 제우스가 시기하여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항아리를 생존과 화합의 수단으로 변화시켜 아테네라는 도시문명을 구축하였다. 아테네인들은 집집마다 작은 항아리에 먹을 곡식과 포도주를 보관하여 일상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 항아리에 포도주를 담아 아테네 시민들을 모두 마시고 취하여,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거행하였다. 이들은 항아리가 숙성시킨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운명과 경험에 의해 고정된 자아(自我)를 탈출하는 엑스타시(ecstasy)를 수련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제 자유로워진 자아를, ‘아테네’라는 민주공동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숙고하며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여 아테네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구축하도록 노력한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바로 스스로 정한 정의(正義)가 상대방의 눈으로 보면 불의(不義)가 될 수도 있다는 자유로운 생각을 신장하는 비극작품이다. 아폴로는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와 함께 법정에 들어서며 그를 변호하겠다고 말한다. 아테나는 재판 개시를 선언하고 원고인 ‘분노하는 여신들’을 불러, 그들의 고소 내용을 듣기 시작한다. 아테네인들은 스스로 이 항아리를 통해 무엇을 구축하려고 하는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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