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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세대 갈등 뒤의 진짜 적

입력
2017.06.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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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고장 났다가 유리 겔러의 TV 쇼 시간에 별안간 고쳐졌던 시계, 뜨거운 바람은 안 나오고 타는 냄새만 나는 공포의 헤어드라이기, 이젠 팔기나 하는가 싶은 카세트테이프 재생기, 대학 시절 자취방에서 쓰다 다 태워먹은 것을 가져다 거짓말처럼 광이 나게 닦아낸 냄비 같은 것들.

오래된 물건들은 그 시절을 상기시킨다. 토요일을 포함해 주 6일을 매일같이 야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유명무실했던 날들. 그건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일이고, 당연히 내 기억 속에도 남아있다. 1997년 외환위기, 소위 IMF 사태가 터지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세한 기업가는 망해버렸고, 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없이 쫓겨났다.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나오는 흔한 반론은 이렇다. 과거 전후 세대, 산업화 시대, 가까이는 외환위기 시대에 비해 청년 세대의 경제활동이 정말 어려운가? 고가의 스마트폰을 주기적으로 갈아치우고, 식사 한 끼보다 비싼 디저트를 먹는 청년 세대의 소비가 기성세대의 그것에 비해 빈곤하다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사실 오늘날의 문제는 이와는 좀 다른 것이다. 오늘날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으되 더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 문제는 대표적이다. 노동자 10명중 3명 이상이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인 단기근속자로,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는 그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쪼개기 계약이나 하청은 관행으로 굳어버렸다.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함에 있어 과거의 빈곤과 오늘날의 풍요를 되새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건 과거에 비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다 해서 경감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커피 한 잔 값을 십 년을 아낀다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불안정성에 대한 공포는 특히 갓 사회에 진입하려는 젊은 세대에게 성공에 대한 강박을 주입한다. 여기에 더해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에게 인생의 한 가지 목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좋은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해 집을 사는 것. 즉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건 눈높이를 낮추라, 힘든 일에 뛰어들라는 조언이 무의미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례없이 고용 불안정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이는 곧 더 쉽게 무너질 바닥에 올라서라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쟁취하라는 목표와 완전히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거의 미덕을 오늘날의 전혀 다른 현실에 끼워 맞춰 요구함으로써 생기는 당연한 모순이다.

그렇다면 세대 갈등은 필연적인 것인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점은 이런 불안정성이 비단 청년만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성세대 중 50ㆍ60대 퇴직자들은 더 불안정한 직업을 찾거나, 그보다도 더 불안정한 자영업에 뛰어든다. 심지어 30ㆍ40대 중년층조차 언제 바닥이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거두지 못한다.

즉, 풍요 속에 가린 불안정성이란 이면은 사실 세대를 불문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래서 이 세대 갈등은 사실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문화적인 것이다. 직업, 결혼, 주거 등 성공과 안정에 대한 과거의 기준을 새로운 시대에 강요하는 것이 불필요한 세대 갈등을 낳는 것이다.

두 세대의 갈등 뒤에는 진짜 문제가 숨겨져 있고, 그건 다른 세대와 싸우고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화합하고 함께함으로써 극복해야 할 문제다. 장기근속을 사실상 막고 고용 불안정성을 심화한 현재의 비정규직 법은 대대적인 손질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장도급,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제도 시행이 시급하다. 그 위에서 비로소 우린 진취적인 삶과 성공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또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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