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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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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미국 대선

입력
2016.02.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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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에선 대선이 치러진다. 선거 시스템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실제 투표를 하는 건 11월인데도 선거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아주 뜨겁다. 대선이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이번 대선이 특히나 관심을 많이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출마한 후보들 때문이다. 경선 이전에 민주당과 공화당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당 내 경선을 시작하자 흐름은 역전됐다. 모두에게 의외의 결과였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경쟁도 흥미를 주는 일이지만 그보다 공화당 상황이 매체의 관심을 많이 끌고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효과 때문이다.

정치 지식이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억만장자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공화당 멤버들은 다소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른 후보를 쉽게 넘어섰다. 설문조사 자료를 봐도 트럼프 지지율이 다른 공화당 후보보다 높다. 여러 스캔들, 말 실수, 인종차별ㆍ성차별 발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

러시아 정치에서도 트럼프와 같은 캐릭터가 한 명 있다.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Vladimir Zhirinovsky)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공산당에 맞서기 위해 자유민주당을 만든 뒤 꾸준히 당대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러시아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정치가인데 도널드 트럼프와 이미지가 같다고 보면 될 듯하다. 정치가보다 개그맨이라고 자주 불린다. 성차별ㆍ인종차별ㆍ제국주의 선언 등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웃기게 하는 발언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한 사람이다. 논란이 가장 많았던 발언을 예로 들자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아예 러시아연방으로 합병해야 한다고 했고 캅카스 산맥 국가 출신 이민자들은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본국으로 강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없애고 러시아를 다시 왕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주먹으로 여자 동료를 때리는 사건도 있었고,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생방송 도중 상대방에게 욕설을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 활동 외에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했고 영화에도 몇 번 카메오로 등장한 적이 있으며 음반을 내기까지 했다.

한두 번도 아닌 스캔들과 충격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지리놉스키는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정치가다.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러시아 정치가 중 유일하게 소련 붕괴 이후 매번 대선 후보로 나간 정치가란 사실이다. 1991년 러시아 역대 최초 민주주의 대선에선 7.8% 투표율로 3위에 그쳤다. 하지만 확실한 지도자가 있었던 2008년 대선에서도 9.3%의 투표율로 3위에 오르며 본인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리놉스키는 벌써 2018년 예정인 러시아 대선에도 출마 선언을 했다. 개그맨과 같은 이미지의 이 정치가에 대한 지지율이 왜 이리 높은 걸까.

그 답은 이 정치가가 하는 역할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것은 원래 딱딱하고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다. 게다가 요새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이 많이 떨어져 있다. 이럴 땐 항상 애매하고 의미 없는 말을 하는 전문 정치가보다 다들 알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는 걸 시원하게 이야기해 버리는 정치가가 쉽게 떠오른다. 흔히 포퓰리즘이라는 현상이다. 광대는 항상 인기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광대를 지도자로 정하는 나라는 전 역사를 뒤집어도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역시 그렇다. 고급 어휘를 쓰면서 허풍 떠는 다른 대선 후보와 달리 ‘길가 언어’를 사용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 하는 주제를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시원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는 것과 나라의 리더가 되어 나라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지리놉스키가 매번 대선에 나가서 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올해 미국 대선이 어떻게 펼쳐질지 계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흥미 있는 대선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내년에 있을 대한민국 대선도, 내후년에 있을 러시아 대선도 많은 주목을 받을 만한 대선이어서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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