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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년수당은 가족복지다

입력
2018.06.19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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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을,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 나는 가만히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내담자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시 청년수당의 신청자들이었고, 그날은 청년수당이 직권 취소된 지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수당 지급이 불발된 바로 그 아이들의 상담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장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 이는, 5년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교에 다니고, 공무원 준비까지 병행한 청년이었다. 단 하루 만에도 도망가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택배 상하차를 5년 동안, 새벽과 심야 하루 두 번을 하며 수험생활까지 이어 온 그.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수험생활 비용, 생활비, 심지어 가정에 조금씩 보태기까지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의 세월. 친구들은 점점 합격해 사회로 나아가는데, 그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단 반년 만이라도 공부에 집중해 보고 싶었다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하지만 그가 부러워했던 공부에 몰두한 친구들 역시 부담감은 상당했다.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는 거였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려고 해도, “아서라, 빨리 붙어 주는 게 효도다”라는 만류 속에, 한 해 한 해 합격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고 토로하는 그들. 비단 공시생과 임용고시생뿐만 아니라, 취업 전반이 장기화하는 현상 속에서 그 기간에 투입되는 자금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비롯된다. 수험생활 시작 시점에 ‘이 정도 기간 내엔 합격하겠다’는 계획은 막상 실전에 돌입하면 오차가 발생하고, 부모의 지원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적금이, 전세금이, 퇴직연금이 자녀에게로 긴급 수혈된다. 윗돌을 빼서 일단 아랫돌을 괴는 것이다.

혹자는 자녀 양육법이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다. 이 비판은 지극히 개인의 무지와 판단 착오로 쏠리는 느낌이 든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흔적들, 자녀가 입신양명하도록 부모가 지원을 전담하고 장성한 자녀가 다시 부모를 봉양했던 그 오랜 순환 고리가 현대에는 끊어졌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며 밀어주자고 다짐했다고 해서,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까?

그렇다면 안되는 걸 붙잡고 있느라 부모 허리를 휘게 하는 청년이 문제일까? 아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은, 실제로 오래 걸리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20대의 구직기간은 40대, 50대의 구직기간보다 길어졌다.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걸 체감한다면, 그보다 더 긴 20대의 구직기간이 단지 ‘애들 마인드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이렇게 시간은 길어지고, 문은 좁아진 자녀들의 취업에 발맞춰 부모세대의 노후 대비 계획 역시 조금씩 틀어져 가는 지금의 현상들. 청년에게 주어지는 수당은 단순히 그들만을 위한 복지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오롯이 가정에 그 역할이 맡겨졌던 ‘뒷바라지’를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장성한 자녀를 아직도 업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50ㆍ60세대의 휘어가는 등을 잠시 펼 수 있도록 행정에서 그 짐을 나눠서 지는 거라면, 청년수당은 가정을 위한 복지, 노후를 지켜 주기 위한 복지의 역할도 수행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젊고 팔팔한 녀석들에게 왜 돈을 주냐, 눈을 낮추지 않아서 일을 못 구할 뿐인 그들에게 왜 세금을 붓느냐고 아직 물으신다면 마지막으로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 팔팔한 녀석들은 우리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많은 부모가 ‘내 자녀만큼은’ 번듯하게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며, 공공은 최대 다수 시민의 바람을 담아내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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